“자라와 H&M 같은 패션 브랜드들이 설치한 재활용 수거함은 소비자들의 죄책감을 달래는 ‘위약(placebo)’일 뿐이다. 기부품의 상당수는 결국 가난한 나라의 쓰레기 매립지로 향한다. 지난 25년간 패션 산업이 환경 피해를 줄이려고 시도했던 모든 노력은 실패했다.”
글로벌 패션 브랜드 팀버랜드의 고위 임원 출신인 케네스 퍼커 플레처스쿨 교수가 최근 HBR(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기고해 화제가 된 보고서의 일부다. 패션 산업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10%를 차지할 만큼 친환경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최근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트렌드가 유행하면서 환경 친화적 생산·유통 방식을 도입하는 패션 기업이 부쩍 늘었다.
시도는 좋았다. 하지만 실효성이 낮다는 게 퍼커 교수의 지적이다. 이는 공급망이 복잡하고 대량의 재고 발생이 불가피한 패션 산업의 구조적 특성 탓이기도 하다.
실제 패션 업계가 ‘지속가능한 패션’을 추구한 결과 받아든 성적표는 초라하기만 하다. 퍼커 교수 연구진에 따르면 현재로선 전 세계적으로 단 1% 미만의 재활용 의류가 새 옷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또한 중고 거래를 통한 탄소 배출량 감소율 역시 지난 10년간 연평균 0.01% 미만에 그쳤다. 각자 나름의 노력을 기울여 온 패션 업체들로선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 결과라고 서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결과를 접하는 소비자들은 지금까지의 노력마저 ‘그린 워싱(친환경 위장 전략)’이라 여길 수 있다.
개선책은 있을까. 그 첫걸음은 아이러니하게도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란 말을 남발하기 전에 실제 성과를 스스로 살피는 리뷰와 반성에 있다. 지난해 친환경 패션 브랜드 파타고니아가 미국에 진출한 대기업들의 평판 순위를 매기는 ‘액시오스·해리스 100’ 브랜드 평판 설문조사에서 전년 대비 31계단이나 뛰어올라 1위를 차지한 것도 ‘지속가능성’이란 용어를 자제하기로 한 것과 관련이 있다고 브랜드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파타고니아는 자기 검열을 통해 패션 업계의 구조적 한계로 진정한 지속가능성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했고, 이런 결정이 소비자들로 하여금 오히려 진정성을 느끼게 한 것으로 해석된다.
퍼커 교수는 더 나아가 대부분의 패션 기업은 자체 검열에 실패한 만큼 강제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카펫 등 환경오염 물질 배출량이 많은 제품에 대해 제조업체에 제품 폐기 비용을 선불로 지불하도록 하는 생산자 책임 재활용제도(EPR) 법안 도입 등이 그 예로 꼽혔다.
이러한 법적 제재를 두려워하기에 앞서 기업이 먼저 눈치를 봐야 할 대상이 소비자란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맥킨지에 따르면 특히 차세대 소비자로 꼽히는 Z세대 중 90%는 ‘브랜드가 환경 이슈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파타고니아의 창업자 이본 슈이나드는 “빠른 성장에 매달리는 마케팅이 오히려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저해한다”고 강조한다. ‘친환경’을 넘어 ‘필환경’이 생존 무기가 된 시대, 브랜드 전략은 그래서 빨리 가는 것이 아니라 멀리 가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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