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 걸어둔 이우환 화백의 작품 ‘다이얼로그’. 그림을 보며 차라도 한잔하면 저절로 명상에 잠기게 되고, 하루의 피로감마저 금세 사라진다. 이 작품에 대한 소장가의 만족도는 그림이 주는 이런 편안함 때문만은 아니다. 큰마음 먹고 구입한 작품 가격이 최근 들어 크게 오른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이우환 전성시대’가 열리면서 그의 작품은 곧 유가증권이 됐다. 좋아서 산 그림으로 돈까지 벌었으니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셈이다.
“돈을 벌려면 어떤 작품을 사야 하나요?” 15년 넘게 미술경영아카데미를 운영하면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다. ‘미술품이 돈이 되는 시대’라지만, 과연 어떤 작품을 사야 돈을 벌 수 있을까? 모든 작품들이 다 돈이 될까?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미술품으로 돈을 벌 방법은 다양하다. 갤러리, 아트페어, 경매, 공동구매, 대체불가토큰(NFT)….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아트 재테크의 길은 주변에 널려 있다. 그런데 왜 미술품으로 큰돈을 벌었다는 사람은 많지 않을까? 이는 질문이 틀렸기 때문이다. “돈을 벌려면 ‘어떤 작가’의 작품을 사야 하나요?”라고 물어야 한다. 미술품 투자는 작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비전에 투자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 며칠 전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큰 인기를 누리는 젊은 작가가 하소연을 해왔다. 자신의 팬을 자처하던 컬렉터에게 판매했던 작품이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경매에 나왔기 때문. 단지 단기 투자처로 자신의 작품을 여긴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미술품을 소비하는 방식은 크게 ‘향유’와 ‘투자’로 구분된다. 향유는 일상에서의 감상과 작가의 중장기적 후원이란 목적을 동시에 충족하는 방안이다. 미술품의 건전한 소비 패턴인 셈이다. 하지만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한 투자는 전혀 다르다. 이는 미술품을 매개로 한 금융상품과 같다. 그에 따른 별도의 조건과 시스템이 요구된다. 아트 컬렉터 입문자라면 두 경우를 혼동해선 안 된다. 향유를 위한 것인지, 투자가 목적인지 명확한 선 긋기가 필요하다.
헤르만 헤세는 “모든 예술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데 있다. 그것은 예술가에게 더없는 위안이 된다”고 했다. 과연 창작자와 수요자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지혜로운 소비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해볼 시기이다. 미술에 투자하는 방식과 관점을 작품에서 작가로 옮겨야 상생할 수 있다. 건강한 미술시장의 생태계 기반을 마련하고, 장기적 안목의 순기능을 발휘하도록 관심을 기울여야겠다.
국민소득 3만∼4만 달러 시대엔 문화산업 시장 규모가 급성장하기 시작한다. 현물소비에서 감성소비로, 생계형 복지에서 문화형 복지로 패턴이 바뀌기 때문이다. 그만큼 삶의 질과 수준이 중요해진다. 우리는 바로 그 문턱을 넘고 있다. 미술시장 성장도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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