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짭짤하고 고소한 삼겹살은 한국을 대표하는 돼지고기 요리다. 삼겹살은 1980년대 들어서 우리 식탁에 본격 등장했다. 한국 외에도 유라시아 전역에서 돼지비계를 즐기는 나라가 적지 않다. 특히 유라시아 초원 서쪽 끝에 위치한 우크라이나에선 염장을 한 생삼겹살이 대표 요리로 통한다. 우크라이나 초원지역의 교류와 그 역사에 대해 살펴보자.》
추위를 이기는 고열량 음식
나는 추운 시베리아 지역에서 유학을 했다. 유학시절 영하 30∼영하 40도를 넘나드는 여섯 번의 겨울을 지켜준 음식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돼지비계를 염장한 ‘살로’다. 만드는 법은 비교적 간단하다. 단지에 생돼지비계를 넣고 그 위에 소금을 뿌리면 된다. 그 자체로 맛있지만 추운 겨울에 얇게 잘라서 빵과 함께 먹으면 더 좋다. 고열량인 데다 각종 비타민이 풍부해 추위를 이겨내는 음식으로 인기가 높다. 시베리아와 극동 지역에는 우크라이나 출신이 아주 많기 때문에, 그들의 음식은 자연스럽게 시베리아의 토착 음식으로 여겨지게 됐다.
비계를 먹는 풍습은 우크라이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고대 로마에는 ‘라르도’라는 음식이 있었다. 영국, 그리고 그 영향을 받은 미국에서도 ‘포크 스크래칭’이라는 간식이나 요리를 먹는다. 우리 역사에서는 추운 북쪽 지방에 살던 읍루인, 그리고 그들의 후손인 만주족들이 돼지비계 요리를 즐겼다. 다만 대부분 나라에서는 비계를 먹는 것을 그리 자랑스러워하지 않는다. 돼지비계는 상하기가 쉽고 역한 냄새가 강해서 요리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빈곤층이나 고기를 손질하는 일부 직업 종사자들만 숨어서 먹는 음식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인들의 살로에 대한 사랑은 남다르다. 우크라이나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꼽는 것은 물론 한때 서부 리비우에는 살로박물관이 있었다. 한데 이상한 점이 있다. 우크라이나는 ‘체르노젬’이라는 흑토지대가 발달한 세계의 곡창지대이다. 신선한 곡물과 야채가 풍부한 우크라이나에서 어쩌다 날 비계가 대표 음식으로 자리 잡았을까. 그 배경에는 다양한 문화가 교차한 비옥지대에서 살아온 우크라이나인의 역사가 숨어있다.
약소국의 강인한 생존력 상징
우크라이나인들의 돼지비계 사랑은 약 1000년 전 ‘키이우 루시’ 시절의 기록에도 등장할 정도로 오래 됐다. 키이우 루시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인이 대다수를 이루는 슬라브인들이 세운 최초의 나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 이전부터 우크라이나 일대에는 동아시아 초원에서 건너온 유목민들이 정착해 살고 있었다.
우선 우리나라 삼국시대인 서기 3세기대에 중국에 패망한 흉노의 일파에서 시작된 훈족의 대이동이 이 지역까지 밀려왔다. 그 직후엔 몽골에서 나라를 만들고 고구려와도 협력했던 유연의 후예인 아바르족이 이곳에 선진 기마문화를 전파했다. 튀르크 일파가 세운 하자르 칸국도 동유럽과의 교역을 담당하며 세력을 키웠다. 여기에 키이우 루시가 멸망한 직후 몽골이 세운 킵차크한국(汗國)까지 있었다.
이렇듯 동아시아에서 시작된 유라시아 초원의 문화는 우크라이나 고대 역사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살로라는 음식의 어원도 동쪽에서 지속적으로 밀려온 유목민들의 등장과 관계가 있다. 살로는 말의 ‘안장(Saddle)’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돼지 살 위에 얹어진 지방이 마치 푹신한 안장 같다는 뜻이다.
우크라이나에서 살로의 등장은 오랜 외세의 지배를 받아온 역사와 관련이 있다. 16세기 이후 우크라이나의 역사는 코사크인의 발흥으로 다시 시작됐다. 강인함의 상징인 ‘추드’(변발의 일종)를 한 코사크인들은 독립을 향한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살로도 이때를 기점으로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 널리 유행하기 시작했다. 당시 이 지역을 지배하던 무슬림 튀르크나 유대인들은 모두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다. 자연히 상대적으로 가장 구하기 쉬운 돼지비계를 이용한 요리가 발달한 것이다. 돼지비계는 오랜 기간 주변 강대국들의 지배를 받던 우크라이나인들의 든든한 열량 공급원으로 사랑받았다. 마치 6·25전쟁 직후 널리 퍼진 부대찌개나 곰장어처럼, 다른 이들이 잘 먹지 않는 음식을 개발한 것이다. 살로가 지금까지 국민음식으로 사랑받는 것도 그들의 강인한 생존력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보드카 곁들이는 최고의 술안주
삼겹살은 1970년대 말에야 서울에서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비계가 낀 돼지고기에 대한 사랑은 역사가 깊다. 일제강점기에 나오는 요리책에서도 “세겹살(삼겹살)은 돼지 중에 최고”라 칭할 정도였다. 삼겹살 구이는 비계 특유의 잡내 때문에 식탁에 늦게 등장했다. 비계는 고기 중에서 제일 싸고 인기가 없다. 하지만 냄새를 없애고 비계 사이사이에 고기를 끼워 넣는 종자 개량을 통해 삼겹살이라는 음식이 탄생했다.
한국과 우크라이나는 모두 지정학적으로 유라시아의 끝자락에 위치해 유목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주변 강대국들 사이에서 고초를 겪었다는 공통점도 있다. 이런 배경으로 양국 모두 농업에 기반하지만 다양한 고기의 가공문화가 발달했다. 고기는 또 농경민이 쉽게 접하기 힘든 음식이다. 가난한 두 나라는 돼지비계 요리를 개발해 부족한 음식을 보충하려 했던 것 아닐까. 살로와 삼겹살에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으니, 최고의 술안주라는 점이다. 삼겹살엔 소주처럼 살로엔 보드카다. 그리고 양배추절임을 곁들인다.
따지고 보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언어, 문화, 풍습 등 유사한 점이 많다. 두 나라는 2000만 명의 희생으로 히틀러 나치의 공격을 막아낸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서로를 파시스트라 부르며 동족상잔의 비극을 연출하고 있다. 설사 러시아군이 물러간다고 해도 우크라이나에 거주하는 러시아계 사람들과의 내전 같은 갈등이 우려된다. 6·25전쟁의 깊은 트라우마가 있는 우리로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지옥도일 것이다. 어떠한 명분으로도 폭력은 더 이상 안 된다. 전쟁은 끝나야 한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청년들이 염장 삼겹살에 보드카 한잔을 진하게 마시고 포옹할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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