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 국보 가상화폐 투자 ‘증도가자’ 논란 교훈 삼아야[광화문에서/김상운]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19일 03시 00분


김상운 문화부 차장
김상운 문화부 차장
수년 전 최고(最古)의 고려 금속활자 여부로 논란을 빚은 ‘증도가자(證道歌字)’ 사건의 핵심은 출처와 구입 경로였다. 당시 증도가자 소유자와 일부 서지학자들은 해당 활자가 고려시대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를 인쇄한 금속활자라며 보물 지정을 신청했다. 그러나 7년 논란 끝에 문화재위원회는 2017년 4월 지정을 부결했다. 활자 출토지가 불분명한 데다 소유주가 활자를 구입했다는 이전 소유주들이 사망해 구입 경로를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증도가자가 아니더라도 고려시대 활자가 맞는다면 보물로 지정하자는 주장이 나왔지만 전문가들의 견해는 달랐다. 구입 경로가 의심스러운 물건을 국가의 상징이자 얼굴인 국보, 보물로 지정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최근 가상화폐 투자자 모임인 헤리티지 DAO(탈중앙화 자율조직)가 간송미술관으로부터 구입한 국보 금동삼존불감(金銅三尊佛龕) 소유권을 간송 측에 다시 돌려주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증도가자 사건이 떠올랐다. 간송과 DAO 간 매매계약 체결과 이른바 ‘기부’ 발표 과정에서 의혹이 제기되고 있어서다.

지난달 23일 전인건 간송미술관장에서 헤리티지 DAO로 소유자가 변경된 지 불과 21일 만에 발표된 DAO의 ‘기부’ 방침은 소유 지분의 51%만 전 관장에게 돌려준다는 점에서 ‘지분 투자’나 ‘공동 소유’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 헤리티지 DAO에는 외국인을 포함해 56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개인 혹은 법인만이 국보, 보물을 소유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한 DAO 참여자가 대표로 있는 싱가포르 소재 법인을 매매계약 주체로 내세웠다. 문화재계 관계자는 “싱가포르에 있다는 해당 법인이 투자를 위한 페이퍼컴퍼니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일종의 조합에 가까운 DAO가 임의로 지정한 법인을 권리주체로 인정할 수 있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현행 문화재보호법에 외국인 투자자 혹은 외국 법인이 국보 지분을 소유하는 데 대한 규정이 없는 것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문화재청은 국보나 보물은 국외 반출이 허용되지 않기에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예컨대 일본인 투자자가 국보 지분을 보유한다면 국민 정서상 용납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불감에 대한 대체불가능토큰(NFT) 수익화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올 초 경매시장에서 유찰된 불감으로 조만간 시세차익을 얻기 어려운 상황에서 DAO가 불감 매입에 나선 이유를 NFT 발행에서 찾는 이가 많다. 앞서 간송은 지난해 국보 훈민정음 해례본을 대상으로 NFT 100억 원어치를 발행해 이 중 70, 80%를 팔았다. 하지만 간송은 “DAO가 불감을 활용한 NFT 상품화 조건 없이 국보를 기증했다”고 밝혔다. 아마도 훈민정음 해례본 NFT 발행 당시 국보 상업화에 대한 비판 여론을 의식했을 수 있다.

간송미술관은 3년 전 박물관 등록 이후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수장고 건립, 문화재 보존, 신규 미술관 설치 등의 비용으로 수백억 원을 지원받았다. 간송의 사회적 책무를 감안할 때 국보, 보물만큼은 구입 경로까지 꼼꼼히 따져야 한다는 증도가자 사건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간송#가상화폐#증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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