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도 착실하게 늙어갔다. 얼굴에 비누 거품을 칠하고 세면대 거울 앞에 선다. 그리고 거품에 대해 생각한다. 거품은 묘하구나. 내실이 없구나. 지속되지 않는구나. 터지기 쉽구나. 존재하기는 하는구나. 확고하게 존재하는 건 아니구나. 그러나 아름답구나. 지상에서 천국으로 가는구나. 그러나 천상에 닿기 전에 꺼져버리는구나.
무엇이 거품에 비유돼왔나. 투기로 인해 치솟은 주식 같은 것들. 이유 없이 오른 가격은 곧 꺼져버릴 것이다. 상처를 남길 것이다. 선망으로 인해 치솟은 인기 같은 것들. 곧 꺼져버릴 것이다. 상처를 남길 것이다. 최고의 배우였던 고 최진실마저도 “거품 인생 살았다”라는 말을 남겼다. 희망이나 계획이 무너졌을 때, 우리는 수포로 돌아갔다는 표현을 쓴다. 어디 그뿐이랴. 인생 자체가 거품에 비유된다. 로마 네로 황제 시대의 작가 티투스 페트로니우스 니게르는 기상천외한 풍자소설 ‘사티리콘’에서 말했다. “우리는 파리보다도 저열하다. 파리들은 그들 나름의 덕성이라도 있지, 우리는 거품에 불과하다.” 만화 ‘죠죠의 기묘한 모험’에 등장하는 시저 안토니오 체펠리는 “인생을 거품처럼 살다간 사나이”라는 평을 받았다.
인생을 거품에 비유한 예술작품들을 묶어 ‘호모 불라’(homo bulla, 인간은 거품이다)라고 부른다. 호모 불라를 소재로 한 작품은 꽤 오래전부터 존재해왔고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지는데, 그 전성기는 아무래도 17세기 네덜란드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호모 불라 그림들에서는 예외 없이 누군가 비누 거품을 불고 있고, 그 거품은 곧 꺼질 인생의 덧없음을 상징한다.
누가 거품을 부는가? 가장 많이 등장하는 주인공은 어린이다. 왜 하필 어린이일까. 어린이는 자라기 시작했고, 희망에 차서 꿈을 꿀 것이기 때문이다. 어린이는 아직 천진해, 자신의 꿈과 희망이 언젠가 산산조각이 날 줄을 모른다. 거품은 아름답게 두둥실 허공을 배회한다. 거품에 매혹된 아이의 시선은 거품을 따라간다. 17세기 후반 암스테르담에서 활동한 화가 힐리암 판데르하우언의 작품 배경에는 시간을 상징하는 해시계가 그려져 있다. 아이의 뒤에서 시간은 착실히 흘러갈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거품은 터지고, 꿈은 사라질 것이다.
노인이라면 결국 거품은 터지고, 꿈이 사라질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로마의 작가 바로는 말했다. “인간이 거품이라면, 노인이야 말할 것도 없겠지.” 그러나 호모 불라를 다룬 작품에서 노인이 거품을 부는 모습은 발견하기 어렵다. 인생의 허무를 이미 알고 있는 상태가 호모 불라의 주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인생의 허무를 모른 채, 마냥 거품을 불어대는 것이 호모 불라의 주제다. 따라서 그림의 주인공은 노인이 아니라 아이여야 한다. 노인의 역할은 그 그림을 보면서 자기가 어린 시절 좇았던 꿈을 떠올리는 것이다.
수많은 아이 중에서 하필 큐피드가 등장하는 호모 불라 그림들이 있다. 역시 17세기 암스테르담에서 활약한 화가 이사크 더야우데르빌러는 아이 대신 큐피드를 그려 넣었다. 왜 하필 큐피드인가. 큐피드는 성애를 상징한다. 성애는 시간과 싸워야 한다. 계속 감정의 고조 상태를 유지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열정적인 성애도 시간이 흐르면 거품처럼 사라진다. 학교 선생직을 때려치우고 여생을 그림과 시 창작에 몰두하며 보낸, 독일 작가 프란츠 비트캄프는 노래한다. “말해 주세요, 얼마나 오랫동안 나를 사랑할 수 있나요?”
호모 불라의 마지막 주인공은 해골이다. 독일 밤베르크의 홀리그레이브 채플 천장을 보라. 거기에 해골이 등장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인간에게 죽음은 불가피하고, 죽음으로 인해 인생은 거품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계속 거품을 불 뿐이다. 노블티 오케스트라 밴드의 1919년 히트곡, ‘난 영원히 거품을 불 거예요(I‘m Forever Blowing Bubbles)’의 후렴은 다음과 같다. “난 영원히 거품을 불 거예요/허공의 예쁜 거품들/그들은 높이 날아가/거의 하늘에 닿지요/그런 다음 내 꿈처럼 시들어 죽지요/우연은 언제나 숨어 있어/난 영원히 거품을 불 거예요/허공의 예쁜 거품을.”
인간이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인 한, 인생은 거품이다. 그러나 거품은 저주나 축복이기 이전에 인간의 조건이다. 적어도 인간의 피부는. 과학자 몬티 라이먼은 ‘피부는 인생이다’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다. “한 사람의 몸에서 매일 떨어져 나가는 피부 세포는 100만 개 이상이고 이는 보통 집에 쌓인 먼지의 절반가량을 차지할 정도의 규모인데 표피 전체가 매월 완전히 새로운 세포들로 교체되며 심지어 이런 흐름이 멈추지 않고 이뤄지면서도 피부 장벽에 샐 틈도 생기지 않는다… 즉, 인간의 피부는 가장 이상적인 거품 형태라고 밝혀졌다.”
아침이 오면, 거품 같은 인간이 세면대 앞에서 비누 거품을 칠하고, 자신의 오래된 거품인 피부를 씻는다. 또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부풀어 오르지만 지속되지 않을, 매혹적으로 떠오르되 결국 하늘에 닿지는 못할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또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