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마리아’는 성모마리아에게 바치는 노래다. 물론 유일한 찬양의 대상은 천주이신 하느님밖에 없으므로 신에게 바치는 찬양인 ‘흠숭지례’와는 구별되는 ‘공경지례’에 속한다. 성인을 향한 공경의 뜻을 표한다고 볼 수 있다. 가사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 부분은 ‘수태고지’ 장면이 수록된 누가복음 1장 28절의 내용이다. 수태고지란 천사 가브리엘이 처녀인 마리아에게 하느님의 독생자가 성령으로 잉태될 것을 알리며 축복의 인사를 건네는 장면을 말한다. 두 번째 부분은 13세기에 추가된 기도문으로서 임종 시에 성모께서 함께해 주기를 바라는 간구로 되어 있다.
신의 섭리로 사람으로 맛볼 수 있는 최고의 행복과 최고의 슬픔을 맛보아야 했던 성모. 어쩌면 사람들의 몰이해와 손가락질을 감내해야 했을지도 모르는 그에게 신심 깊은 이들은 이 노래로 공경을 표한다. ‘수태고지’는 회화의 중요한 소재였던 것처럼, 아베마리아도 숱하게 많은 음악 작품을 탄생시켰다. 쉬츠, 멘델스존, 브루크너, 케루비니, 프랑크, 리스트, 생상스 등은 ‘아베마리아’의 라틴어 텍스트에 솔로 혹은 합창을 위한 성가곡을 남겼고 슈베르트는 월터 스콧의 ‘호반의 아가씨’에 나오는 창작 가사에다 유명한 아베마리아를 작곡했다. 하지만 이 모든 아베마리아들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은 구노의 곡이다.
프랑스 그랑 오페라의 가장 뛰어난 작곡가였던 그는 세련된 선율과 뛰어난 관현악법으로 ‘파우스트’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대작을 남겼지만 프랑스의 가곡인 ‘멜로디’ 등 서정적인 소품에서도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다. 구노는 아베마리아를 작곡할 때 특이하게도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의 첫 곡 위에 대선율을 얹는 식으로 넣어 비교적 간단하게(?) 곡을 만들어냈다. 대선율이란 처음에 주어진 화성 안에서 정선율과 마주 보는 위치로 새로운 선율을 만든 것을 뜻한다.
물론 이러한 작곡 방식은 푸가 같은 다성음악에서 늘 활용되는 방식이다. 하지만 구노가 바흐의 전주곡을 반주로 활용한 것은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곧 바흐의 전주곡이 일종의 반주 역할을 하고 구노의 새로운 선율이 멜로디가 되어 하나의 노래가 만들어진 것이다. 서로 다른 종류의 음악이 결합되었지만 처음부터 한 몸이었던 양 음악은 자연스럽다. 이처럼 바흐의 기존 작품으로 반주를 삼은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작곡하는 데 드는 힘을 아끼고 싶어서? 그럴 리 없다.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은 사실 건반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연습곡이었음에도 그 안에 깊은 내면의 고백이 실려 있다. 기술을 넘어서는 정신. 구노는 여기에 또 하나의 존경심을 표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구노는 바흐 음악 안에 있는 신심을, 자신의 고백과 엮어 유례없는 걸작을 만들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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