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일간 110번 언론과 인터뷰한 日총리[특파원칼럼/이상훈]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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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관저 로비 기자회견, 소통의 척도
대통령 인터뷰 일상 되면 불통 해결

이상훈 도쿄 특파원
이상훈 도쿄 특파원
일본 도호쿠(東北) 지역에서 동일본대지진 이후 11년 만에 규모 7.4 강진이 일어난 16일. 오후 11시 36분 지진이 발생한 지 정확히 19분 뒤인 11시 55분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바쁜 걸음으로 관저에 모습을 드러냈다. 관저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 앞에 선 기시다 총리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부가 하나가 돼 긴급 상황에 대처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한 뒤 집무실로 뛰어 올라갔다. 긴박한 순간, 로비의 기자들에게 던지는 총리의 코멘트는 TV로 전국에 중계되며 대국민 메시지가 됐다.

일본에서는 기자들이 관저 로비에서 기다리다가 총리와 약식으로 갖는 인터뷰를 ‘부라사가리(ぶら下がり)’라고 부른다. ‘매달린다’는 뜻의 ‘부라사가루’라는 일본어 동사에서 파생된 단어로 출퇴근하는 총리를 따라붙어 코멘트를 따는 약식 인터뷰를 가리킨다. 총리로서는 귀찮고 피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취재에 응하는 것을 의무로 여긴다. 기자들이 따라붙는 취재에 얼마나 성실히 응하는지가 국민과의 소통을 가늠하는 척도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지진, 북한 미사일 발사 등이 터졌을 때 총리가 숨찬 목소리로 마이크 앞에 서는 건 정부와 국민이 소통하는 이 나라의 매뉴얼이다. ‘관료들이 써 준 대로 읽는다’ ‘보여 주기용 쇼’라는 비판도 있지만 정부 주요 정책 상당수가 이 자리에서 총리 입으로 처음 공개되기 때문에 정부와 언론 모두 긴장감을 갖는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외국인 입국규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 대한 축하 인사 모두 여기서 나왔다. 공식 기자회견도 수시로 열린다. 휴대전화에 찍히는 ‘오늘 오후 7시 총리 기자회견’ 속보 메시지는 평범한 일상이다.

질문이 끝날 때까지 ‘이제 됐나요’라고 되물으며 인터뷰를 끝내지 않는다. 일본 주요 언론은 기시다 총리가 취임 165일째인 지난주에 약식 인터뷰 100회, 공식 기자회견 10회를 채웠다고 보도했다. 주말, 공휴일을 감안하면 사실상 매일 기자들과 문답을 주고받은 셈이다. 지난해 10월 취임한 기시다 총리는 1년 단명으로 물러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전 총리가 인터뷰 도중 질문을 끊고 자리를 뜨다가 받은 비판을 타산지석으로 삼고 있다. “소통이 부족했다”고 비판받은 스가 전 총리도 165일간 공식 기자회견 8번을 포함해 61회의 인터뷰를 가졌다.

대통령 기자회견이 연례행사가 된 한국의 눈으로는 이런 모습이 낯설다. 국가 정상과 국민이 얼굴을 마주하는 횟수의 차이가 커도 너무 크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대통령이 2주 만에 세 번 방문했던 청와대 춘추관은 이제 비서실장조차 발길이 드물다. 장관들도 언제부턴가 기자회견장에서 발표문만 읽고 나가기 일쑤다. 박근혜 정부의 소통 부족을 비판했던 현 정부의 불통은 과거 정부를 넘어선 지 오래다.

윤 당선인은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1층에 기자들이 머무는 프레스센터를 두겠다고 했다. 집무실을 어디에 두건 적어도 대통령과 언론이 한 건물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국민과의 소통에 큰 힘이 될 수 있다. 대통령이 출퇴근할 때마다 집무실 건물 로비에서 기자들과 문답을 주고받는다고 상상해 보자. 대통령이 마이크 앞에서 불쾌해할 장면도, 때로는 기자들을 무시하며 지나칠 모습도 모두 국민에게 전해질 생생한 메시지다. 엉뚱한 질문으로 언론이 비판받는다면 이조차 건강한 자극제가 될 것이다. 대통령이 언론 앞에 서는 게 일상이 되는 것만으로도 불통 문제는 자연스럽게 풀릴 수 있다.

#일본 총리#기시다 후미오#기자회견#소통의 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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