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은 진성(true) 파시스트의 전형이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이 2018년 발간한 책 ‘파시즘’에서 내놓은 평가다. 북한을 “세속적인 IS(이슬람국가)”라고 비유하기도 했다. 북한에서 신격화된 김씨 일가가 독재정권을 세습하며 주민들의 삶은 피폐해지는 것을 비판하는 취지다. 그런데 그는 2000년 미 장관으로선 처음 북한을 방문했고, 김정일을 “지적인 인물”이라고 호평했었다. 그 사이에 북한에 대한 평가가 180도 달라진 것일까.
▷북-미 간에 화해무드가 무르익던 시기에 찾아온 올브라이트에게 김정일은 적극적이었다. 함께 집단체조를 관람하던 중 미사일 발사 장면이 등장하자 김정일은 “첫 번째 쏘는 것이자 마지막으로 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민감하게 여기는 올브라이트를 배려한 발언이었다. 그도 김일성의 묘를 참배하며 성의를 보였다. 하지만 그는 자서전에서 “외교상으로 필수적인 듯했으므로 묘를 찾았지만 어떤 경의도 바칠 수 없었다”고 썼다. 내심까지 북한을 존중한 것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23일 타계한 올브라이트는 뼛속까지 외교관이었다. 1978년 국가안보회의(NSC)에서 일한 것을 시작으로 클린턴 행정부에서는 미국 외교의 핵심인 유엔대사와 국무장관을 지냈다. 그는 “클린턴 행정부의 양심”이라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로 해외 인권침해 문제에 적극 개입하면서도 국익 중심의 외교에 무게를 뒀다. 올브라이트는 브로치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내비치는 ‘브로치 외교’로도 유명하다. 김정일을 만날 때에는 성조기, 김대중 대통령과 회담할 때는 햇살 모양 브로치를 달았다.
▷체코에서 유대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힘겨운 유년시절을 보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로 조부모를 비롯한 친인척 26명이 목숨을 잃었다. 홀로코스트를 피해 영국으로 피신했다 돌아오니 이번엔 체코에 공산정권이 들어섰다. 외교관이던 아버지가 생명에 위협을 받게 되자 가족 모두 미국으로 도피했다. 이후 스스로의 힘으로 유리천장을 깨고 여성 최초로 미 행정부의 3인자인 국무장관까지 올랐다.
▷“나는 ‘은퇴’라는 단어를 혐오한다”고 그는 말하곤 했다. 64세에 장관에서 물러난 뒤 학계와 싱크탱크에서 활동했고, 숨지기 전까지 국제문제 컨설팅업체 ‘올브라이트 스톤브리지 그룹’의 회장을 지냈다. 2020년에는 책 ‘지옥과 다른 목적지들’을 펴냈다. 방북 당시 그를 수행했던 웬디 셔먼은 국무부 부장관이 됐고, 조지타운대에서 그에게 배운 네드 프라이스는 국무부 대변인으로 활동 중이다. 거장은 떠났지만 그의 정신과 인맥은 미 외교가에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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