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발 경제위기, 장기화 대비할 때다[동아광장/이지홍]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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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 불분명, 종료 불투명한 대러 제재
원자재발 공급위기, 금융위기 우려 커져
외부쇼크 취약 韓경제 정신 바짝 차려야

이지홍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이지홍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한 달째로 접어들고 있다. 반인륜적 무력행사에 맞서 미국과 서방 진영은 군사 행동 대신 ‘경제제재’를 택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지난 20년간 그 사용 빈도와 범위가 크게 늘어나며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는 전술이다. 그러나 경제제재만으로 러시아를 변화시키긴 어렵다. 장기화된다면 포스트 코로나 인플레이션 때문에 이미 삐걱대는 글로벌 경제를 수렁에 빠뜨릴 공산이 크다. 한국 경제에 폭풍이 몰려오고 있다.

먼저 목표가 불분명하다. 대(對)북한 경제제재에도 ‘비핵화’란 구체적인 목표가 있다. 한데 이번 경우는 아직도 ‘엔드 게임’의 시나리오만 무성하다. 러시아를 우크라이나에서 완전히 내쫓자는 건지, 아니면 적당한 선에서의 타협을 염두에 두고 있는 건지 오리무중 상태다. 구(舊)냉전시대의 ‘봉쇄(containment)’ 전략에서 심지어 러시아 내부 쿠데타까지 거론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자유 수호’란 원론적 명분만 되풀이하며 제재 수위를 점점 높이고 있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맞불을 놓는 위태로운 확산 형국이다. 명확한 목표 없이는 언제 어떻게 제재가 끝날지 예측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더 큰 문제는 돈이다. 러시아 경제를 ‘왕따’시키는 데 드는 비용의 엄청난 규모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러시아는 에너지를 비롯한 세계 최대 자원 부국이다. 원유 가격이 배럴당 10달러 상승하면 미국 인플레는 0.2%가량 증가한다. 지난해 12월 배럴당 60∼70달러 수준이던 유가는 130달러 돌파 후 진정세를 보이고는 있지만 200달러 전망까지 나온다. 여기에 원자재 전반에 걸친 가파른 가격 상승세를 고려하면 어느새 7%까지 올라온 글로벌 인플레가 금방 두 자릿수로 치솟을 수 있다. 급격한 금리 인상과 이로 인한 불황의 가능성이 커지는 이유다.

러시아는 오일·가스 말고도 4차 산업혁명을 견인하는 반도체와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팔라듐과 니켈의 주요 생산국이기도 하다. 이들의 가격은 두 배로 뛰었다. 반도체는 팬데믹 때문에 수요가 공급을 넘어선 지 오래인데 이젠 원자재발(發) 공급 쇼크까지 일어날 판이다. 금융위기 또한 우려된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수천억 달러에 달하는 글로벌 기업들과 금융권의 러시아 자산이 한순간에 날아갈 수 있다. 이 밖에도 경제 전쟁이 장기화될 시 글로벌 경제의 발목을 잡을 폭탄이 도처에 널려 있다.

제재 비용의 규모도 중요하지만 그 비용을 누가 부담하는지도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 가장 혹독한 비용을 치르는 건 물론 러시아다. 그런데 그 피해의 대부분은 러시아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은 러시아 정권과 군부다. 이들에게 직접적이고 충분한 타격을 가하지 못하면 제재의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2008년 조지아 침공과 2014년 크림반도 병합 이후 러시아가 받은 제재만 100개가 넘는다. 지금도 북한은 하루가 멀다 하고 ‘발사체’를 날리고 있다. 제재를 달고 사는 또 하나의 ‘악의 축’ 이란도 끈질기게 버티며 중동에서 벌어지는 분쟁마다 개입을 멈추지 않는다.

비용 부담 문제는 제재를 가하는 측에도 분열 요소로 작용한다. 각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미국 혼자 단행한 러시아 원유의 수입 금지 조치다. 미국은 실질적인 에너지 독립 국가지만 유럽의 사정은 다르다. 원유는 그렇다 쳐도 러시아 의존도가 무려 45%에 달하는 가스 얘기는 꺼내지도 못할 형편이다. 한편 중국은 러시아와 교역을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확대하는 중이다. 전쟁 발발 직전 장기 에너지 수입 계약을 체결했다. 양국은 달러 대신 위안화 거래 비중을 꾸준히 늘리며 서방의 금융 제재에도 대비하고 있었다. 중국과 파키스탄을 견제해야만 하는 인도는 러시아 무기의 핵심 거래처다.

이렇게 목표는 불분명하고 가성비 낮은 전술이 단시일에 성과를 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강경 노선을 취한 바이든 대통령과 서방 정상들의 지지율은 연일 상한가다. 그만큼 민심이 들끓고 있다. 아무래도 긴 싸움이 될 것 같다. 뚜렷한 목표와 전략 수립만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텐데, 그 사이 열강들의 무모하고 이기적인 파워 게임은 점점 더 고조될 것이다. 특히 중국의 행보가 주목된다. 중국을 겨냥한 추가 제재 가능성마저 생기고 있다. 한국 경제는 외부 쇼크에 취약하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사방에서 들이닥칠 난관을 뚫기 힘들 것이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경제위기#원자재발 공급위기#금융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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