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그저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라고 있는 것만은 아니에요. 인생은 자신이 뿌듯해할 수 있는 삶을 살라고 있는 거예요.” ―클레어 와인랜드
몇 년 전 나는 심한 오한과 근육통을 앓은 후 이름 모를 병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불과 두세 달 만에 잠시 일어나 앉기도 힘들 지경이 되더니, 반년이 걸려서야 자율신경계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집중치료에 좀 좋아지나 싶으면 다시 악화되길 반복하면서, 멘털이 강하다고 자부했던 나도 다 포기하고 그냥 푹 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정신과 의사로서 흔히 듣던 “아침에 눈을 안 뜨면 좋겠다”는 수동적 자살 사고가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그즈음, 낭포성섬유증이라는 불치병을 가진 소녀가 산소 콧줄을 낀 채 허스키한 목소리로 전하는 메시지를 듣게 됐다. 고통에 시달리며 죽어가는 그를 보면서 누군가는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삶’이라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인생은 그저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라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며, 그 가혹한 상황에서도 자신이 뿌듯해할 수 있는 삶을 살면 된다고 전하고 있었다. 그 말을 듣고선 스르르 감겨가던 내 눈이 번쩍 뜨였다. 의사 일은커녕 사람 구실이나 제대로 하겠나 염려했는데, 그럼에도 내가 뿌듯할 만한 선택을 하면 된단 말이지!
길어지는 팬데믹에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다.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오는 거야!’ 하는 원망이 자연스레 나오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라는 패배감이 들기도 할 것이다. 이때, 작은 것이라도 내가 뿌듯해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면 어떨까. 아침에 일어나 이불을 갤 수도 있다. 가족을 안아주며 사랑의 말을 전할 수도 있다. 이런 모습이 분노하고 절망하고 있는 나보다는 훨씬 뿌듯한 내가 아니겠는가. 인생은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내가 뿌듯한 삶을 살라고 있는 것이니까.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