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IPEF 구상’ 향후 전망과 과제
동맹국과 협력 통한 中견제… 바이든 정책이 협의체로 구체화
의회서 통상권한 받기 어려워… 무역-공급망-탈탄소-조세 등
4개 부문별로 참여국과 협상… FTA와 다른 복수협정 구성 전망
《미국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출범 이후 날이 갈수록 격화되던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이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가늠할 수 없었지만, 이제 이런 짙은 안갯속에서 벗어나 미국이 방향을 잡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실 바이든 행정부는 대중 견제 전략으로 핵심 전략산업을 중심으로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하고 노동, 인권, 환경 등의 이슈를 통상 문제와 연계해야 한다고 말로만 강조해왔다. 그러다 지난해 10월 27일 온라인으로 개최된 동아시아 정상회의에서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주의적 대중 견제에서 벗어나 ‘동맹국과의 협력을 통한 중국 견제’라는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 방향이 구체적인 협의체로 구체화된 것이다.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소위 ‘깐부’들과 함께 중국을 견제하자는 것이다. IPEF를 이러한 ‘깐부’들의 ‘동아리’로 제시한 셈이다.》
○ 한미, 상반기 내 협상 시작할 듯
지난해 11월 중순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과 캐서린 타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일본,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한국을 차례로 순방하면서 본격적인 논의가 정부 차원에서 시작됐다. 특히 한미 양국은 올 1월에도 통상교섭본부장과 USTR 대표 간의 협의를 통해 이러한 구상을 구체화하는 논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양측 정부로부터 구체적인 내용이 밝혀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공정하고 회복력 있는 무역, 공급망 회복력, 인프라·청정에너지·탈탄소, 조세·반부패 등의 4가지 분야에 초점을 두고 올 상반기(1∼6월)에 협상을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바이든 행정부는 미 의회와 각종 정책연구소 등 국내 전문가로부터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리더십을 회복하고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통상정책을 이행할 것을 촉구받았다. 심지어 일본, 호주로부터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좀 더 적극적으로 관여할 것을 요청받았다.
그러나 미국의 법적 제도와 정치적 일정을 고려하면 미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기존의 자유무역협정(FTA)과 같은 통상협정을 추진하기 어렵다. 미국은 헌법상 통상협상권이 행정부가 아닌 의회에 있다.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은 의회로부터 위임을 받아 통상협상에 임한다. 이러한 위임된 통상협상 권한을 ‘무역증진권한(TPA)’이라고 한다. 어떤 국가와 어떠한 목표를 가지고 통상협상에 임할 것인지 행정부가 의회에 신청하면 의회는 구체적인 협상 목표를 설정해 행정부에 그 권한을 한시적으로 위임한다.
○ IPEF, 복수의 부문별 협정으로 구성될 듯
미국은 올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안으로는 급격한 인플레이션과 같은 경제 문제에 직면했다. 밖으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여야 간 치열한 정치 공방이 오가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바이든 행정부가 미 의회로부터 TPA를 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앞으로 점차 구체화될 IPEF는 기존의 전통적인 무역협정과는 다를 것이다. 복수의 협정 패키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IPEF는 포괄적인 FTA의 형태는 아니며 무역, 공급망, 인프라·청정에너지·탈탄소, 조세·반부패 등 부문별 접근방법(Sectoral approach)을 통해 복수의 협정을 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상무부와 무역대표부가 공동의장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4개 분야별로 참여하는 국가와 협상의 속도가 각각 다른 구조가 될 것이라고 알려졌다. 이러한 방식은 미국 역시 해보지 않은 새로운 방식이다. 미래의 통상 및 경제협력 관련 협정의 새로운 모델로 인식될 것이다.
무역 분야에는 디지털 무역, 경쟁, 무역 원활화, 노동 및 환경 등이 포함될 예정이다. 이 분야에서 새로운 통상 규범이 설립된다는 뜻이다.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전환이 대세인 요즘의 경제 상황과 경쟁, 노동 및 환경 분야가 최근 경영 분야의 화두인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논의 등을 고려하면 의미 있는 변화다. 한국 역시 협상 초기부터 적극 참여해 우리의 입장을 규범 설정 과정에서 반영시켜야 할 것이다.
공급망 분야에서도 조기경보시스템, 핵심 품목 공급망 보안 강화 등이 협의될 예정이다. 최근 수년 동안 경험한 공급망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우리가 이 논의에 참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인도태평양 지역의 역내 인프라, 오염물질 배출 저감, 파리협정 약속 진전 등이 논의될 인프라·청정에너지·탈탄소 분야 역시 한국이 관심을 가지고 대응해야 할 분야다.
조세·반부패 분야에서는 글로벌 최저한세 노력 지속, 자금세탁방지 표준 이행 등이 논의될 예정이다. 특히 글로벌 최저한세로 15%가 제시되는 등 관련 논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논의가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한국 역시 IPEF를 통해 우리의 입장이 반영될 수 있도록 적극 참여할 필요가 있다.
○ IPEF, 경제협정의 새로운 이정표
IPEF는 다양한 측면에서 평가될 수 있다. 먼저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 이후 거론한 이슈가 모두 망라된 것이다. 예를 들면 노동, 환경, 디지털 전환, 공급망, 인프라, 반부패 등의 이슈가 있다. 탈탄소, 글로벌 최저한세 등 국제사회에서 최근 논의되고 있는 이슈 역시 포함하고 있어 ‘경제협력’ 분야의 협정에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둘째, 미국은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트럼프 행정부와는 달리 유럽과의 협력을 가속하고 있다. 그 단적인 예가 ‘미국-유럽연합(EU)의 무역기술위원회(TTC)’이다. 미국은 TTC를 통한 유럽과의 협력과 IPEF를 통한 아시아태평양 지역과의 협력 등 투트랙 접근방법을 통해 리더십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 is back)’는 바이든 대통령 취임 당시의 일성(一聲)을 현실화한 산물이라 평가된다.
셋째, 미국 민주당 정권인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 이전 오바마 행정부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IPEF는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중심 전략(Pivot to Asia)’의 시즌 2로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IPEF는 디지털 무역, 노동, 환경, 경쟁, 공급망, 인프라, 글로벌 최저한세 등 최근 화두가 되는 분야에 새로운 규범 설립의 장(場)이 될 것이다. 한국 정부는 우리의 입장이 반영될 수 있도록 초기 단계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국제규범 설립 과정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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