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 예산안 편성 때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10조 원의 추가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29일 밝혔다. 집행 부진 사업 삭감, 코로나 한시 지출 정상화, 유사 기금 통폐합, 국유재산 매각 등 재정혁신 방안으로 문재인 정부의 확장 재정 기조를 정상화하려는 취지다. 내년 예산안에서 현 정부가 주력해 온 한국판 뉴딜, 포용적 선도국가 전환 과제를 줄이거나 폐기하는 등 재정사업의 일대 전환을 예고한 것이다.
이 같은 ‘예산 다이어트’는 최근 몇 년간 재난지원금과 복지사업 등으로 나랏빚이 임계치에 이를 정도로 늘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한국의 국가채무에 대해 국제 신용평가사인 피치가 중기적으로 국가신용등급 압박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할 정도다. 지금 당장도 문제지만 한국은 앞으로 2025년까지 매년 100조 원 이상의 적자가 쌓이는 구조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한번 시작한 복지사업이 눈덩이처럼 커지면서 나라 곳간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지출 구조조정 자체가 쉽지 않은 데다 차기 정부의 공약 이행에도 천문학적인 돈이 든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한 해 본예산 600조 원 중 절반은 반드시 써야 하는 의무 지출이다. 그나마 손을 댈 수 있는 게 재량 지출이지만 그 안에는 국방비 등 경직성 지출이 많아 규모를 대폭 줄이기 어렵다. 무엇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공약한 노인기초연금, 병사 월급 인상안에다 소상공인을 위한 50조 원 규모의 2차 추가경정예산에 드는 돈을 어디서 짜내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다. 모두 재정 투입 수준을 판단하는 명확한 기준 하나 없이 자의적으로 재정사업을 늘린 결과다.
대내외 위기가 반복되는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는 재정적자를 수습하지 못하고 다음 세대에 과중한 부담을 떠넘기게 될 수 있다. 국가채무와 재정적자를 일정 수준 이내로 묶는 재정준칙만이 방만한 재정 운영을 막고 추경을 탄력적으로 운용하게끔 하는 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중 34개국이 재정준칙을 도입했지만 한국에선 2020년 말 이 기준이 국회에 제출된 뒤 1년이 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나라 곳간을 운용하는 최소한의 기준도 없이 재정 정상화만 외치는 것은 공허하기 이를 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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