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꽃들이 다 아름답지만 벚꽃은 더 그렇다. 만발한 벚꽃 속을 거니는 감흥은 정말이지 느껴보지 않으면 모른다.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거리를 ‘단둘이 손잡고’ 걸으면 ‘알 수 없는 떨림’을 충분히 느낄 만하다.(버스커버스커의 ‘벚꽃 엔딩’) 그런데 봄에는 수많은 꽃이 피는데 왜 꽃구경 하면 벚꽃을 첫손으로 꼽을까?
우리는 꽃들이 봄이면 ‘그냥’ 피는 거라고 여기지만 그렇지 않다. 살아 있음에는 ‘그냥’이 없기 때문이다. ‘그냥’ 살라치면 ‘그냥’ 사라진다. 꽃들의 세상에서도 남들과 똑같이 해서는 잘 살아남을 수 없다. 자신만의 전략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아는 많은 꽃들은 크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 조금이라도 더 오래 피어 있으려 한다. 그래야 꽃가루받이를 해주는 벌과 나비들이 계속해서 찾아줄 게 아닌가. 하지만 남들처럼 하면 남들 이상으로 잘 살 수 없는 법. 뭔가 달라야 한다. 그래서 벚꽃이나 산수유는 역발상 전략을 펼친다. 많은 꽃들이 ‘가늘고 길게’ 필 때 ‘짧고 굵게’ 피우는 것이다. 작은 꽃들을 한꺼번에 폭발적으로 말이다.
물론 크게 피워 길게 가면 좋을 수도 있지만 여기에 전력투구했다가 초식동물에게 먹히거나 하는 사고를 당하면 어쩔 것인가. 잘못하면 1년 농사 망칠 수도 있다. 그래서 이들은 인해전술처럼 작은 꽃들을 잔뜩 준비했다가 한 번에 터뜨린다. 어느 날 갑자기 확 피어 벌과 나비 같은 매개동물들의 눈을 확 사로잡아버리는 것이다. 활짝 핀 벚꽃에 우리가 너나없이 몰려가듯 매개동물들이 ‘벌 떼처럼’ 몰려들도록 말이다. 이러면 꽃가루받이를 ‘짧고 굵게’ 끝낼 수 있다. 온 세상을 환하게 밝히며 꽃구경의 대명사까지 되고 말이다. 참고로 벚꽃을 일본 꽃으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많은데 일본은 국화를 공식 지정한 적이 없다. 우리가 흔히 보는 왕벚나무의 원산지도 제주도이고 말이다.
어쨌든 작은 것들이 모여 커다란 협력을 만들어내는 이런 전략은 의외로 자연에서 흔하다. 흔하다는 건 그만큼 효과가 좋다는 뜻인데, 예를 들어 하루살이들은 1년에 딱 하루만 하늘로 날아올라 짝짓기 축제를 연 뒤 사라진다. 이러면 새들이 아무리 열심히 사냥해도 아주 일부만 잡힐 뿐 대다수는 후손을 남길 수 있다. 이 때문에 미국 미시시피강에서 이루어지는 하루살이들의 축제는 인공위성 사진에 시커멓게 나타날 정도인데 어림잡아 18억 마리쯤 된다고 한다. 작아도 뭉치면 작은 게 아니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
여름밤을 웅장하게 꽉 채우는 개구리들의 합창도 그렇고 가끔씩 온 세상을 덮을 듯 가는 곳마다 초토화시키는 메뚜기들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에겐 시끄럽기만 하고 피해가 크지만 그들에겐 아주 탁월한 전략이다. 정말이지 숫자는 힘이다. 하나로 모으기만 하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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