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희균]여성가족부, 그 존재의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1일 03시 00분


수시로 개편·폐지 도마 오르는 여가부
존재 가치 입증하려면 반성과 각오부터

김희균 정책사회부장
김희균 정책사회부장
여성가족부의 연혁은 ‘2001년 여성부, 2005년 여성가족부, 2008년 여성부, 2010년 여성가족부’로 도돌이표를 그려 왔다. 여성가족부의 영어 명칭은 ‘Ministry of Gender Equality and Family’, 즉 양성평등가족부다. 그렇다면 예전 여성부 시절의 영어 명칭은 ‘Ministry for Women’이었을까.

아니다. 기존 대통령 소속 여성특별위원회(The Presidential Committee on Women‘s Affairs)의 한계를 넘겠다며 만든 여성부의 영어 명칭은 애당초 ‘Ministry of Gender Equality’였다.

국제 명칭에는 일관되게 ‘양성평등’을 쓰면서 국내 명칭에서는 결코 ‘여성’을 놓지 않은 이 부처는 누구를 위해 존재했을까. 여성을 위한 성과가 없진 않겠지만, 이 부처가 대체로 일반 다수 여성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했는지, 되레 불합리한 프레임을 씌운 일은 없는지 의구심이 든다.

단적인 예를 들면 여가부 장관 13명은 예외 없이 여자다. 역대 장관들을 보면 초반에는 특정 대학과 여성단체 출신이 주를 이뤘고, 후반에는 부처 관련 전문성이 없는 낙하산 정치인이 많았다. 여가부 장관이란 이너서클 여자들끼리 나눠 먹는 자리거나, 아무나 앉혀도 할 수 있는 자리로 추락한 감이 있다. 그러다 보니 여가부 장관이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범죄 피해자에게 ‘고소인’이라고 하거나,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행을 두고 “보궐선거는 성인지 감수성 학습 기회”라 망언을 하는 참사가 벌어지는 것이다.

여가부가 남녀가 평등한 나라에 기여했는지도 의문이다. ‘여성부’ 시절이던 2004년 이 부처는 영유아 보육 업무를 가져와 몸집을 불렸다. 보육은 여성의 몫이라고 여성부 스스로 선언한 모양새다. 지난해 여가부 산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의 교육용 영상이 ‘남성은 성범죄의 잠재적 가해자이고, 남성 스스로 나쁜 남성이 아님을 증명하는 게 시민적 의무’라고 한 것을 보면 한숨이 난다.

공정에 민감한 젊은 세대는 분노한다. 장관을 비롯한 산하 기관장이 으레 여성 몫인 것뿐만 아니라 위치 문제도 제기한다. 입지가 중요한 외교안보 부처만 빼고 전 부처가 세종시로 갔는데, 여가부는 무슨 이유로 광화문 한복판에 남아 있는지 따진다. 스스로 평등을 지키지 않는데 국민에게 평등을 말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근자의 여가부 폐지 논의가 이처럼 켜켜이 쌓인 고민과 구조적 문제에서 시작되고 무르익은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아쉽다. 그래서 이 글은 여가부 폐지에 대한 찬반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여가부가 스스로 존재 가치를 지킬 수 있는가, 국가기관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묻는 것이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극명히 드러난 대로 지금 우리 사회의 젠더 갈등은 심각하다. 성별 대립이 더 심해지면 여가부의 업무 영역인 가족 자체가 사라질 판이다. 여가부는 물론이고 여가부 폐지에 반대하는 이들도 ‘여성’이라는 부분에 매달리거나 매몰되면 답이 없다.

여가부가 여성 특혜 시비를 부르고, 왜곡된 성역할을 만들고, 약자의 처지에 놓인 여성에게 2차 가해를 하고, 자신들이 보호해야 할 위안부 할머니의 등을 친 사건에 침묵하는 행태를 반복한다면 ‘여성을 볼모로 한 이익집단’이라는 평가를 피할 수 없다.

이런 자세로는 ‘미래가족부’로 살아남는다 한들 미래가 어둡다. ‘여성청소년가족부’로 연명한다 한들 여성도, 청소년도 반색할 리 없다. 진짜 반성과 양성평등이라는 소명을 위한 각오가 있어야만 다시 일할 기회를 청해 볼 수라도 있을 거다. 그렇지 않다면 오히려 여성에게 유해할 수 있다.

#여성가족부#존재의 이유#존재 가치 입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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