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희창]노인 소득 사각지대 여전한데 법에 발목 잡힌 연금통계 개발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1일 03시 00분


박희창 경제부 기자
박희창 경제부 기자
올해 1월 초 통계청은 이미 배포한 보도자료를 돌연 취소하며 기사를 쓰지 말아 달라고 했다. 보도 예정 시각을 불과 20분 남겨둔 시점이었다. 통계청과 국세청이 ‘포괄적 연금통계’ 개발에 필요한 자료 공유를 놓고 합의하지 못했다는 게 이유였다. 심지어 해당 내용은 그날 열린 국무총리 주재 회의에서 확정하기로 한 사안이었다. 부처들은 보통 논의를 사실상 마무리하고 총리 주재 회의에 올린다. 그런데도 부처들이 이견을 좁히지 못해 뒤늦게 보도 취소 요청까지 한 건 매우 이례적이었다.

포괄적 연금통계는 국민연금, 주택연금 등 모든 연금 데이터를 연계해 국민 전체의 연금 가입 및 수급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통계다. 개인연금 계좌 등을 통계청이 갖고 있는 인구·가구통계등록부와 연결하는 식이다. 인구·가구통계등록부에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와 가구의 기본 정보가 담겨 있다. 새로운 통계가 만들어지면 함께 사는 부부가 매달 연금으로 총 얼마를 받는지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국세청에서도 “의미 있는 통계”라고 하는 포괄적 연금통계의 발목을 잡은 것은 결국 ‘법’이었다. 국세청이 갖고 있는 개인연금 수급액 등을 통계청에 전달하면 금융거래 정보의 비밀을 보장하는 금융실명법 위반 소지가 있다. 예외 규정에 따라 국세청이 과세를 목적으로 제공받는 데이터를 통계 작성을 위해 또 다른 기관에 넘겨도 될지 애매한 것이다. 연금 수급액은 민감한 개인정보이기도 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인지도 더 따져봐야 한다.

올해 예산에서 노인 일자리와 사회활동 지원을 위해 잡혀 있는 금액은 약 1조4000억 원이다. 노인 맞춤 돌봄 서비스 예산의 3배가 넘는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약 3배 수준이다. 올해 65세 이상 인구는 지난해보다 43만8000명 늘어난다. 노인들의 소득을 늘려 줄 수 있는 정책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다.

하지만 소득을 늘려 주려면 현재 소득이 얼마인지를 정확히 아는 것이 출발점이다. 최근 만난 정부 고위 관계자는 “한국의 노인이 공식 지표만큼 가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통계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는 사적 연금 소득까지 포함하면 의외로 여유 있는 노인들이 더 많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3개월 가까이 이어진 협의 끝에 통계청과 국세청은 일단 합의점을 찾아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국세청 자료 전부가 통계청과 공유되는 건 아니다. 먼저 국세청 자료 일부를 활용해 통계청이 포괄적 연금통계의 큰 틀을 만든다. 그리고 그 설계도에 맞춰 국세청이 보유한 데이터를 활용해 결과 값을 만들어 다시 전달한다.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찾아낸 복잡한 해법이다.

호주에선 한국과 같은 금융실명법에 통계 작성을 위한 개인연금 정보는 예외적으로 통계청에 제공할 수 있는 규정을 두고 있다고 한다. 그럼 더 시간만 잡아먹는 복잡한 해법도 필요 없다. 지난 대선에서 부동산의 힘을 다시 한번 확인한 여야는 연일 부동산 세제 개편에 열을 올리고 있다. 표가 되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의 미래를 고민하는 국회의원 한 명이 아쉽다.

―세종에서

#노인 소득 사각지대#연금통계 개발#법에 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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