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끝난 아카데미 시상식이 화제다. 남우주연상이나 여우주연상, 작품상보다 더 화제가 된 건 배우 윌 스미스가 시상자인 크리스 록의 따귀를 때린 사건이었다. 록이 스미스의 아내를 향해 선을 넘는 농담을 하자 스미스가 무대로 올라가 록을 폭행한 것이다.
농담도 농담이지만 자기 가족, 그중에서도 아내에게 모욕을 줬다고 생각한 스미스는 시상대로 뚜벅뚜벅 걸어가 전 세계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록의 따귀를 때렸다. 축제의 장이 되어야 할 시상식이 순간 얼어붙었다. 호사가들은 “스미스가 화낼 만하다” “아니다. 아무리 화가 나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 등 설전을 벌였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문화의 차이도 있고, 유머를 받아들이는 문화의 차이도 있겠지만 상대방이 마음 편하게 웃을 수 없다면 그건 유머가 아니다.
최근 방송 프로그램을 보면 비슷한 상황이 많이 나온다. 자기 스스로 자기 가족을 깎아내리기도 하고, 상대방이 내 가족을 깎아내리는 말을 농담처럼 할 때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말한다. “가족은 건드리지 말라.” 맞는 말이다. 가족을 건드리는데 가만히 있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폭력으로 응수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런 수위 넘은 공격을 받아주고 넘어가주면 다음에 또 선을 넘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반드시 지적을 해줄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게 말이 쉽지, 실전에서는 참 어려운 문제다.
얼마 전 중학생 딸이 책상에 엎드려 울고 있기에 무슨 일인가 조용히 물어봤다. 아이는 절대 대답하지 않았다. 기분이 정리될 때까지 기다려줬더니 친한 친구랑 말다툼을 했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뭐가 그렇게 억울한지 말하다가 울고 말하다가 울고, 보고 있는 내가 더 속이 상했다. 사춘기 친구들끼리 얘기하다 보니 엄마, 아빠에 대한 불만도 얘기하고 자기들끼리 낄낄거리고 웃었는데 친구가 갑자기 “네 아빠는” 하면서 우리 가족을 건드렸고, “그럼 네 아빠는” 하면서 맞장구를 치다 보니 싸움이 된 것 같았다. 얘기하면서도 화가 안 풀렸는지 몇 번을 울고 참고를 반복했다. 나는 안아주면서 “네가 마음이 넓으니까 참아”라고 했는데 “싫어. 내가 왜 참아야 되는데? 걔가 먼저 선 넘는 말을 했는데 내가 왜 참아야 돼.” “친구랑 싸울 수도 있고, 그러면서 친해지는 거야.” “아니, 나 못 참아.” 그리고 또 엎드려서 울기 시작했다. 나는 그냥 편을 들어주는 게 좋겠다 싶어서 “그래! 그런 애랑 놀지 마! 아무리 농담이라도 가족은 건드리는 거 아니지!” 그제야 아이는 울음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잠들기 전에 아이에게 “사랑해”라고 말해줬더니 아이도 “나도 사랑해”라고 말하고 곤히 잠이 들었다. 아, 내 나이 오십. 중학생 딸 정도는 설득하고 다독여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나도 아직 철이 덜 들었나 보다. 문득 육남매를 키우신 어머니가 위대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거실에 앉아 생각해봤다. 만약 내가 스미스 상황이었으면 어땠을까? 나도 시상대로 뚜벅뚜벅 걸어 올라가 주먹을 휘둘렀을 것 같다. 단, 상대방의 얼굴이 아닌 허공을 향해. 그리고 한마디 하겠다. “어이, 가족은 건드리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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