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은 항상 시대의 아름다움을 표현해 줄 ‘얼굴’을 요구한다. 셀러브리티(celebrity)가 각광받는 이유다. 현대적 의미의 셀러브리티는 18세기 중반 프랑스에서 처음 등장했다. 프랑스의 루이 15세 궁정의 막후 실력자, 마담 퐁파두르이다.
그녀는 장인 간 협업을 이끌고, 프랑스적 취향과 유행을 제품에 적용토록 했다. 이를 위해 자신이 사용한 제품의 ‘후기’를 장인에게 서신으로 전달하고, 자신의 이미지를 이용해 만든 제품에 ‘프리미엄’을 붙여 판매했다. 그림 속 그녀의 방에 나오는 협탁과 커튼, 모로코산 가죽으로 만든 서류가방, 쿠션, 금시계 등 모두 그녀의 입김이 작용한 제품이다.
패션은 셀러브리티 없이 작동하지 않는다. 최근 가상세계와 현실세계에서 셀러브리티들은 서로 경쟁을 벌인다. 작년 중국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샤오훙수’에 데뷔한 중국의 첫 가상인간 ‘아야이(Ayayi)’는 잡티 없이 하얀 피부를 지닌 탓에 프랑스 화장품 브랜드 ‘겔랑’과도 협업했고 대기업의 디지털 직원이 됐다. 작년 한 해에만 인간 셀러브리티가 각종 스캔들에 시달릴 동안 가상 셀러브리티가 공백을 메우며 벌어들인 돈이 20조 원이 넘는다.
이에 맞서 인간 모델도 대응하기 시작했다. 며칠 전 케이트 모스가 ‘드레스트(DREST)’라는 세계 최초의 럭셔리 패션 스타일링 게임에 등장할 거란 소식이 들렸다. 케이트 모스가 누구인가? 1990년대 최고의 스타일 아이콘이자 미국의 패션 디자이너 캘빈 클라인의 뮤즈가 아니었나. 캘빈 클라인의 청바지를 입은 그녀는 비쩍 마른 몸과 퀭한 눈빛, 풀어헤친 머리칼로 속칭 마약에 빠진 퇴폐미를 뜻하는 ‘헤로인 시크(heroin chic)’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한 시대의 정서를 몸으로 체현해낸 모델이었다.
드레스트라는 게임에서 사용자들은 명품 패션 브랜드의 옷을 이용해 가상모델에게 패션 스타일링을 해보고, 마음에 들면 그 옷을 게임과 연결된 쇼핑몰에서 구매한다. 예전 우리에게 익숙한 종이인형 게임과 별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소비자 경험의 밀도는 매우 높다. 이 모바일 게임 사용자를 대상으로 2주에 걸쳐 개최하는 스타일링 대회에 모스가 실물 아바타로 등장한다고 한다. 이 게임의 참여자들은 구찌, 버버리, 베르사체를 포함한 250개가 넘는 명품 브랜드의 옷과 고급 주얼리 브랜드인 ‘메시카’와 모스가 협업해 만든 보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을 사용할 수 있다.
가상과 현실에서의 셀러브리티 전쟁은 이제 막 시작됐다. 셀러브리티란 ‘명성을 가진 자’란 뜻을 갖고 있다. 이때의 명성이란 누구도 필적할 수 없는 능력이란 뜻과 함께 타인들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 교만에 빠지지 않고 자기를 성찰할 수 있는 힘을 뜻한다. 가상 모델과 인간 모델, 어느 쪽이 더 유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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