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용산 시대’ 성공, 결국은 사람 문제다[오늘과 내일/정용관]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8일 03시 00분


청와대 ‘제왕적 권력’ 해체, 5년 성과로 보여줘야
MB정권 인맥의 그림자 너무 어른거리는 건 문제

정용관 논설위원
정용관 논설위원
대선이 끝나고 어느새 한 달이 흘렀다. 봄은 온 듯한데 진정한 봄은 느껴지지 않는다. 물러갈 정권은 ‘모래알 권력’이나마 끝까지 움켜쥔 채 활로를 살피고 있다. 6월 지방선거에서 대선 패배의 반전을 꾀하겠다는 것이다. 말이 되는 소리냐 했던 이재명 조기 등판설까지 현실화하는 분위기다. 윤석열 당선인의 국정수행에 대한 기대감이 그리 높지 않다는 ‘빈틈’을 노리는 것 같다.

혹자는 대통령 집무실의 무리한 용산 이전 추진으로 첫 단추를 잘못 끼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글쎄다. 용산 이슈가 없었다면 국정운영 기대감이 높아졌을까. 아니라고 본다. 우리의 정치 지형은 이미 뒤틀려 있다. 쌍봉낙타의 등처럼 둘로 갈라진 채 봉우리처럼 굳어진 지 오래다.

윤 당선인의 한 달은 그럼에도 아쉽다. 청와대 해체, 용산 이전 이슈가 새 정부의 1호 과제인 양 너무 부각됐다. 무엇보다 떠날 권력에 반격의 빌미를 주면서 신구(新舊) 권력 충돌로 비화되고 말았다. 몽니, 발목잡기 등 온갖 비판을 들어도 떠날 권력은 잃을 게 없다. 어차피 5월이면 새 정부가 들어서고 시간은 윤 당선인 편인데, 왜 이리 서두르지 하는 의구심을 키웠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윤 당선인 말이 틀린 건 아니다. ‘지배’라는 표현은 좀 과하지만…. 역대 대통령이 모두 실패한 청와대 해체를 실현하려면 누군가 결단하고 무리수를 둘 수밖엔 없다는 뜻도 이해는 된다. 이젠 무를 순 없다. 새벽에 출근하고 심야에 퇴근하든, 야전천막에서 업무를 보든 가긴 가야 한다. 다만 용산 이전에 반대했던 전직 합참의장들의 침묵 이유가 궁금할 뿐이다.

대통령 의식에 영향을 주는 건 공간만이 아니다. 결국 그 공간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누구냐다. 용산 이전 자체보다는 윤 당선인의 ‘작은 청와대’ 구상이 어떻게 구현될지, 어떤 사람이 주변에 포진할지가 관건이다. 하드웨어만 바꾸고 소프트웨어는 그대로 두면 국민을 현혹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당선인 주변에 지나치게 MB 정권 인맥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건 우려된다. 국정 경험이 있고 실력 있는 인사 중에서 옥석을 가려 다시 중용하는 걸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 그런 차원을 넘어 누구누구를 중심으로 한 ‘비선 라인’이 당선인 주변을 에워싸고 있고, 이쪽으로 줄을 대려는 이들이 많다는 소리가 공직사회 등에 파다한 건 경계해야 할 것이다.

니체는 “전쟁의 승리는 승자를 어리석게 만들고, 패자는 심술궂게 만든다”고 했다. 우리 정치판에도 딱 들어맞는 말이다. 윤 당선인에겐 허니문이 없다. 민주당이 발목잡기 역풍을 감안하겠지만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준을 호락호락 해줄 것 같은 분위기는 결코 아니다. 윤석열 정부는 DJP 정권 이래 역대 가장 어려운 정치 환경에서 임기를 시작해야 할 수도 있다.

윤 당선인은 여전히 정치인으로선 원석(原石)에 가까운 듯하다. 청와대 권력을 해체하고 용산 시대를 연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을지, 좌충우돌하다 5년 만에 다시 정권을 넘겨주는 불행한 대통령이 될지는 오롯이 그의 몫이다. 왕도가 뭐가 있겠나. “백성들로부터 미움을 받지 않는 것이 최선의 성채”라는 말이 있다. 정직한 대통령, 정직한 머슴이 되겠다는 초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 고슴도치처럼 우직하되 여우처럼 주변을 잘 살펴야 한다. 너무 서두를 필요가 없다. 그에겐 5년의 시간이 주어졌다. 제왕적 대통령제 탈피는 5년의 성과로 평가받을 것이다.

#윤석열#용산 시대#사람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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