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바꾼 시[이준식의 한시 한 수]〈155〉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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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 전쟁터로 나간 병사, 추위와 고달픔에 잠인들 잘 이룰까.

내 손수 지은 이 전투복, 그 누구 수중에 떨어질는지.

신경 써서 한 땀 더 바느질하고, 정성 담아 한 겹 더 솜을 댄다.

이번 생애야 도리없이 지나가지만, 다음 생엔 인연이 맺어지기를.

(沙場征戍客, 寒苦若爲眠. 戰袍經手作, 知落阿誰邊. 畜意多添線, 含情更着綿. 今生已過也, 重結後身緣.)

사장정수객, 한고약위면. 전포경수작, 지락아수변. 축의다첨선, 함정갱착면. 금생이과야, 중결후신연.


- ‘전투복에 담은 시(포중시·袍中詩)’ 당대 궁녀

변방을 지키는 어느 병사의 손에 들어온 솜옷, 당 현종(玄宗)이 궁녀들을 시켜 만들어 보낸 위문품이었다. 옷 속에서 정체 모를 글귀를 발견한 병사는 어리둥절했다. 무슨 특별한 사연을 적은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가 장난조로 신세타령이라도 한 것일까. 시인지 낙서인지도 모른 채 병사는 곧바로 장수에게 보고했다. 시의를 제대로 깨쳤다면 그 애틋한 마음을 간직하며 한결 따스한 겨울나기를 했으련만, 병사는 이 낯선 문자가 더럭 겁이 났던 모양이다. 이를 받아든 장수 역시 무심하기는 마찬가지여서 다시 황제에게 올린다. 황제가 궁녀들에게 시를 내보이며 죄를 묻지 않을 테니 누가 지었는지 말하라고 했다. 한 땀 한 땀의 바느질과 겹겹의 솜뭉치 사이로 스몄을 젊은 궁녀의 정성이 갸륵했을 테고, 구중궁궐에 갇혀 청춘을 사르며 이생을 포기하고 다음 생애를 기약하는 처지가 측은했을 것이다. 궁녀가 앞으로 나서자 황제는 병사와 금생의 인연을 맺어주었다.

두 사람의 운명을 하루아침에 바꿔놓은 시 한 수. 궁녀로서는 억눌린 절망감을 분출하려 한 통로였지만 결국 병사의 무심 혹은 무지로 말미암아 행운의 중매자로 바뀌었다. 몸과 마음을 쏟아부은 시 한 수와 옷 한 벌이 맺어준 인연, 그것은 무수한 궁녀들이 겪었을 비극 속에서 피어난 가슴 먹먹한 ‘요행’이었다.

#운명을 바꾼 시#전투복에 담은 시#궁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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