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장이라는 직함을 붙인 내 명함을 받아본 사람들은 의아해한다. 고려대가 무슨 선박을 소유하고 있느냐고. 나는 자랑스럽게 말한다. “무역선에서 선장을 했고, 현재도 유효한 선장 면허를 가지고 있다”고. 그러면 대개 “예. 전직 선장이셨군요”라고 한다. 그러면 “아니고요. 현재도 유효한 선장 면허가 있어서 현직 선장입니다”라고 답한다.
대형 로펌에 입사했다. 로펌 측은 내 직함을 ‘해양실장’으로 하자고 했다. “변호사님도 변호사 면허를 가지고 일하시는데, 저도 선장 면허로 해사자문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냐”고 응수했다. 그냥 “선장, 캡틴”으로 불러달라고 했다. 나는 ‘선장 김인현’이라고 불리게 됐다.
선장은 바다에서 선박만 운항하는 것이 아니라 육지에서도 다양하게 활동한다. 바다 위 선박에서 겪은 값진 경험은 육상에서도 효용이 있다. 가령, 선박과 관련된 해상법을 강의할 때 교수가 선장 출신이라면 학생들로부터 더 신뢰를 받는다. 선장 하면 사람들은 리더십의 상징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타이태닉호 침몰 시 끝까지 배에 남아있던 에드워드 스미스 선장과 같이 그런 강한 책임감의 소유자로 여긴다. 왠지 선장 직함을 가진 사람이 운영하는 조직은 잘될 것 같다는 믿음을 준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여든다.
최근 내 선장 직함이 힘을 발휘한 것은 ‘바다, 저자 전문가와의 대화(바다 공부)’ 모임이다. 코로나19로 대면 모임이 불가했다. 2020년 9월 나는 온라인 강의로 바다산업 관련 공부를 하고자 이 모임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바다 관련 저자 20명을 모셔서 20번의 강의를 들으려고 했다. 공부하기를 좋아하는 바닷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강의는 연장됐다. 600명까지 회원이 늘어났다. 해외에서도 참여한다. 운영 대표인 나는 발표자를 선정해 매주 토요일 행사를 진행하고, 발표 내용을 정리하는 작업을 했다. 일요일에는 유튜브 동영상을 만들고 정리 작업을 했다. 리더의 가장 큰 덕목은 자기희생과 봉사라고 믿는 나는 기꺼이 시간과 정열을 여기에 투자했다. 1년 6개월의 긴 여정을 마치고 1차 항해를 올 2월 말 마무리했다. 회원들은 ‘김인현 선장’이 지휘하는 ‘바다 공부모임’호에 승선해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한 것을 감사해했다. 오히려 내가 회원들께 감사하다.
‘바다 공부모임’호는 출항 때 21명이 탑승했다. 중간 기항지마다 사람들이 추가로 승선했다. 1년 6개월 동안 81명의 해운, 조선, 물류, 선박금융, 수산, 해양사 등 전문가들이 발표한 바다 관련 지식이 화물창에 가득히 실렸다. 항해 일수가 쌓이면서 바다 지식이라는 보물은 하나씩 더 쌓여 나갔다. 보물선은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하선하는 우리의 손에는 81강 강의 요약집이 들려 있었다. 또 하나의 육상 선장 역할을 성공적으로 마친 나는 안도했다. 1개월 이상의 달콤한 휴식을 가진 나는 4월 말부터 시작될 2차 출항 준비에 다시 분주하다. 누구나 ‘바다 공부모임’호에 승선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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