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안보는 군사안보, 외교안보, 경제안보, 식량안보 등과 함께 한 나라의 안위를 결정하는 중요한 안보로 꼽힌다. 인구안보는 외부의 도전이나 공격에 대비하고 준비하는 안보와는 달리, 내부에서 스스로를 유지하고 지속하기 위한 차원의 안보다. 적절한 수준의 출생이 이뤄지고, 개인이 건강하게 오래 살면서, 각자 원하는 일을 통해 국가경제에 이바지하는 인구안보는, 한 사회의 지속 여부를 결정할 만큼 중요하다.
한국 사회에서 저출생과 고령화가 현재와 같은 상태로 지속된다면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복지사회 구현은 인구학적인 측면에서는 불가능하다. 아무리 사회안전망을 촘촘히 구축하더라도, 개인은 각자도생의 길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한국의 인구안보는 이미 적신호가 켜졌다. 한국 사회가 외부의 도전이나 공격에 의해 붕괴되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인구안보에 구멍이 뚫리고, 그로 인해 결국 자멸하는 결과에 이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지속 가능성 확보’가 한국 사회의 궁극적 당면 목표라면 21세기 및 그 이후에도 생존해 나갈 수 있도록 로드맵을 짜야 한다. 이를 위해 첫째, 가족 형태와 기능의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저출생과 고령화의 결과로 삼촌, 고모, 사촌들의 수는 줄어드는 대신 조부모, 증조부모 등 여러 세대가 동시에 존재하는 ‘키다리형 확대가족’이 늘고 있다. 새로운 확대가족의 시대로 돌아가며, 확대가족의 유대가 강화되고 삶의 중심이 되는 사회로 전환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와 함께 결혼을 통해 형성되는 가족만이 아니라 비혼가족, 비혈연가족, 반려가족 등 다양한 가족이 출현하고 있다. 이런 다양한 가족이 모두 사회적으로 동등하게 인정받아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나홀로 가구’를 넘어서서 가족 안에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다. 그 속에서 가족들끼리의 부양, 아동보호, 노인돌봄의 해결책도 찾아낼 수 있다. 저출생 고령화의 현대사회에서 가족의 역할과 기능은 다시 매우 중요해지고 있다.
둘째, 가족이 중심이 된다고 과거처럼 여성에게 모든 돌봄과 가사노동을 떠맡길 수 없다. 한국 사회가 지속하기 위해선 여성들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여성은 노동시장에서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커리어에 대한 높은 열망을 지니고 있지만 노동시장의 성별 임금 격차는 여전히 존재한다. 저출생 고령화라는 인구안보 위기 속에서 한국 사회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여성들이 돌봄과 가사 부담에서 벗어나 경력 단절 없이 원하는 대로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셋째, 한국 사회는 한민족 중심의 사회에서 다인종 사회로의 대전환을 준비해야 한다. 한국 사회는 더 이상 순혈주의에 기반해 한국인끼리 결혼하고, 한국인을 재생산하는 ‘한국인만의 한국 사회’로 존재할 수 없다. 이미 전 세계가 그러하듯이, 다른 인종의 인류를 받아들이고 내보내면서 지속할 수 있는 정교한 이민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
이민이 인구안보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인구 정책처럼 이민 정책을 도외시해선 안 된다. 순혈 한국인만을 대상으로 출산력을 높이기 위한 정책에 부심하고, 고령화의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에만 몰두한다면 인구안보 위기에 처한 한국 사회를 구할 수 없다.
넷째, 현재의 저출생 문제 등 여러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이민 정책을 통해 다인종 사회로 연착륙하기 위해서 한국 사회는 지역균형발전을 이룩해야 한다. 지방이 소멸하고 서울과 수도권만 남은 사회에서는 저출생과 고령화 문제를 극복할 수 없다. 또한 이 상황에서 이민을 받아들이면 미래 한국 사회는 서울 및 수도권은 ‘순혈 한국인’ 공화국, 지방은 ‘귀화 한국인’ 공화국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국 사회가 저출생과 고령화라는 인구안보 위기 속에서 생존, 지속하기 위해서는 대전환을 전제로 새로운 사회를 디자인해야 한다. 변화하는 가족 형태에 부응하는 새로운 가족 정책의 수립, 여성과 남성이 상호 존중하면서 가정과 사회에서 함께 기여할 수 있는 성평등 정책, 남성과 여성 간 균형 있는 돌봄경제의 인식과 구현, 지역균형발전과 정교한 이민 정책 등을 기반으로 인구안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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