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프로야구는 출범 30주년이던 2012년 관중이 경기당 평균 1만3451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이후 감소세로 돌아섰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가 미치기 이전인 2019시즌엔 1만119명까지 떨어졌다. 평균 관중 1만 명 수성도 위태로워 보였다. 앞서 2016년엔 평균 관중이 1만1583명으로 줄어든 상태였는데, 당시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사상 첫 800만 관중 돌파를 강조하며 ‘샴페인’을 터뜨렸다. KBO리그 참가 팀이 8개에서 10개로 두 팀 더 많아졌고 한 시즌 전체 경기 수도 532경기에서 720경기로 늘면서 생긴 ‘착시 현상’이었는데 이를 모른 척했다.》
여론조사 기관 한국갤럽은 매년 시즌 개막을 앞두고 전국의 18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국내 프로야구 관심도’를 조사하고 있다. 프로야구 출범 40주년을 맞은 올해 프로야구에 대한 관심도는 31%로 9년 전인 2013년의 44%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 2일 개막한 올 시즌 프로야구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입장 관중 수를 제한했던 지난 두 시즌과 달리 수용할 수 있는 관중의 100%를 받기로 했지만 9일까지 치른 전체 35경기 가운데 ‘만원 관중’은 한 번도 없었다.
○ 등 돌리는 20, 30대 젊은 팬
이처럼 프로야구의 인기가 예전만 못한 이유는 20, 30대 젊은 팬들이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20대의 관심도를 보면 2013년엔 전체 성인 평균과 같은 44%였는데, 올해는 18%까지 낮아졌다. 프로야구에 대한 20대의 관심도가 절반 이상 줄어들면서 10%대까지 떨어진 것이다. 같은 기간 30대의 관심도도 46%에서 28%로 낮아져 전체 평균보다 하락 폭이 컸다. 한국갤럽은 “젊은층의 관심도 하락은 프로야구 신규 관객 유입 적신호, 야구팬의 고령화 가속으로 읽힌다”고 분석했다.
한국프로스포츠협회는 해마다 야구를 비롯해 축구 농구 배구 등 국내 프로스포츠와 관련된 설문조사를 진행해 ‘프로스포츠 관람객 성향조사’ 자료를 내고 있다. 지난해 나온 2020년 자료를 보면 프로야구 팬 가운데 ‘나는 KBO리그를 응원한 지 5년이 되지 않았다’고 답한 비율은 46%다.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수치이지만 이를 갖고 “야구도 ‘입덕’(어떤 분야를 열정적으로 좋아하기 시작하는 것을 가리키는 신조어) 팬이 많다”고 하기는 어렵다. 여자 프로배구는 87.8%, 여자 프로농구는 85%가 입덕 팬이었다. 프로축구도 67.2%로 야구보다 더 높았다. 야구로 새롭게 눈을 돌리는 ‘신규 고객’ 비율도 다른 종목에 비해 높지 않은 상황이다.
2016년 서울대 박사 학위 논문 ‘스포츠방송콘텐츠의 경쟁구조 분석’은 ‘프로야구 (TV) 시청군’ 핵심 구성원으로 평균 43.8세 남성을 들었다. 이들과 띠동갑 정도의 차이가 나는 평균 31.8세 남성이 ‘게임(e스포츠) 시청군’ 핵심 멤버였다. 이들이 여섯 살씩 더 먹은 올해 프로야구 개막일인 2일 프로야구와 e스포츠는 전혀 다른 풍경을 보였다. 프로야구 개막전이 열린 5개 구장을 찾은 관중은 총 6만6889명. 코로나19 유행 이전인 2019년 개막전(11만4028명)의 58.7%에 그쳤다. 이에 비해 e스포츠는 예매 시작과 함께 입장권 3500석이 모두 팔렸다. 이날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LCK) 2022 스프링 결승전’을 시청한 온라인 동시 접속자(PCU)는 137만4155명으로 역대 가장 많은 숫자를 기록했다.
e스포츠 팬은 누구나 직접 게임을 해볼 수 있다. 야구는 그러기 쉽지 않다. 코로나19 사태 전 마지막으로 조사한 2019년 프로스포츠 관람객 조사를 보면 프로야구 팬 가운데 야구 경기를 직접 해봤다는 팬은 17.1%로, 6대 프로스포츠 중 직접 경험 비율이 가장 낮았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는 야구처럼 ‘보는 스포츠’보다 골프 테니스 e스포츠처럼 ‘하는 스포츠’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서 ‘골린이’(골프+어린이)라는 해시태그(#)가 달린 게시물은 약 93만 건, ‘테니스’는 80만 건에 이르는데 ‘프로야구’는 39만 건밖에 되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 ‘스프츠 외 콘텐츠도 경쟁 상대로 삼아야’
경기 시간이 긴 것도 MZ세대의 야구 입덕을 막는 것 중 하나다. 지난해 기준으로 프로야구는 한 경기가 끝나는 데 평균 3시간 14분이 걸렸다. 넷플릭스나 유튜브 같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 넘쳐나는 볼거리와 경쟁하기에는 러닝타임이 길다. 이런 약점을 극복하려면 ‘움짤’(움직이는 짧은 영상)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프로야구는 경기 장면 움짤 제작과 유통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다른 프로스포츠 리그와 달리 저작권 문제로 이를 금지하고 있다.
‘움짤 금지’가 프로야구 인기 하락과 관련이 있다는 건 SNS 팔로어 수를 봐도 알 수 있다. TV 시청률과 구단 매출 등에서는 프로야구가 여전히 축구에 앞서 있지만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 팔로어 수는 경기 움짤이 적지 않게 올라오는 프로축구가 약 13만6000명으로 프로야구(7만5000명)보다 1.8배 많다. 프로야구 스타 선수 이정후(24·키움)는 올 시즌 개막 미디어데이에 팀 대표로 참석해 “나도 경기가 끝나고 내 타석, 그것도 내가 공을 때린 장면만 찾아볼 때가 대부분”이라면서 “움짤 금지는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해법을 꼭 찾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MZ세대가 사회적 책임에 민감한 ‘가치 소비’를 추구한다는 점에서도 선수들의 음주운전, 불법 도박 등의 일탈이 적지 않은 프로야구는 매력적인 브랜드가 아니다. ‘팬 퍼스트’를 외치며 지난달 25일 취임한 허구연 신임 KBO 총재는 공식 업무를 시작하기 전부터 “일부 선수의 일탈이 야구계 전체에 엄청난 타격을 준다는 사실을 명심해 달라”고 공개 메시지를 보냈을 정도다.
프로야구계는 스트라이크 존 정상(확대)화, 국제대회에서의 경쟁력 강화 등 ‘올드 팬’들이 주로 관심을 갖는 일에 신경 쓰고 있다. 하지만 한국스포츠산업경영학회지 게재 논문 ‘한국 프로야구 리그의 관중 수 결정요인 분석’은 통계 자료를 활용해 각 팀들의 전력 수준이나 국제대회 성적 같은 것이 관중 수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논문은 “사회·경제학적 변화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대처를 강구하고, 야구팬들의 새로운 트렌드를 정확히 분석해 수요에 부합하는 야구팬 확보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프로야구가 멀어진 팬들의 관심을 되돌려 예전의 인기를 회복하려면 야구장 안에서뿐만 아니라 바깥에서도 길을 찾아야 한다. 2022년 프로야구의 경쟁 상대는 인기 절정의 전성기 시절 프로야구가 아니라 야구장 밖에 있는 모든 즐길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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