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난제에 ‘오픈 사이언스’로 뭉친 과학계
빨리 나온 코로나 백신도 연구 협력 결과
연구자 지식 공유, 평가·인정 제도 필요하다
4월은 과학의 달이다. 우리나라는 1967년 정부가 과학기술처의 발족일을 기념해 4월 21일을 과학의 날로 지정하고 여러 행사를 통해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실로 과학기술은 인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농경기술의 발달로 식량 부족 문제가 해결되었고 교통기관의 발달로 인류의 활동 범위가 확대되었다. 추후 인공지능 기술은 로봇, 자율주행, 바이오 분야 등에 적용돼 인류의 안전하고 편리한 삶을 지원할 것이며, 메타버스 기술은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새로운 공간을 창출해 낼 것이다.
이러한 과학기술의 발전은 연구자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이루어 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특히 팬데믹과 기후변화 등 인류 차원의 위기에 대해서는 연구자들이 함께 고민하여 해결하는 대규모 협력이 필요하다. 우주개발, 인간유전체 등과 같은 거대과학 분야도 마찬가지다. 이에 과학계의 협력을 강조하는 ‘오픈 사이언스(open science)’ 개념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오픈 사이언스’란 과학지식의 창출 과정과 결과를 개방하자는 움직임이다. 누구나 연구 데이터와 결과물에 자유롭게 접근하고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과학지식의 창출과 확산을 촉진하려는 것이다.
‘오픈 사이언스’의 핵심 요소 중 하나는 ‘오픈 액세스(open access)’다. 일반적으로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을 열람하기 위해서는 출판사에 비용을 지불한다. 그러나 일부 논문은 돈을 내지 않고도 열람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유럽연합의 대표 펀딩 프로그램인 ‘허라이즌 유럽(Horizon Europe)’의 경우, 이를 통해 지원받은 논문은 반드시 ‘오픈 액세스’로 출판해 무상 공개해야 한다. 세금이 투입된 연구의 결과물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철학이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한편 연구자가 출판 비용을 지불하고 ‘오픈 액세스’를 가능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연구 결과의 파급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이다.
‘오픈 사이언스’의 또 다른 핵심 요소는 ‘오픈 데이터(open data)’다. 이는 연구 과정에서 사용한 실험 및 분석 데이터, 선행 연구 자료, 분석도구 등을 공개하고 공유하고자 하는 것이다. 최근 많은 학술지에서 동료 연구자들이 연구 결과를 재현해 볼 수 있게 연구 데이터와 분석도구를 공개하도록 권하고 있다. 일부 연구자는 ‘깃허브’와 같은 공유 플랫폼 등을 통해 자발적으로 데이터와 분석도구를 공유하기도 한다. ‘오픈 데이터’는 연구 결과 검증에도 필요하지만 타 연구자들의 불필요한 데이터 수집 노력을 줄여준다.
이러한 ‘오픈 사이언스’의 효과는 팬데믹 상황에서 두드러졌다. 백신 개발에는 보통 10년 이상이 소요되나 코로나19 백신 개발에는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특히 사스 바이러스의 유전자 염기서열 분석에는 5개월이 걸렸으나, 코로나 바이러스의 경우 1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전 세계 과학자들이 자국 코로나 환자로부터 얻은 다양한 데이터를 공개해 연구의 효율을 높이고 연구 결과 또한 적극적으로 공유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팬데믹이라는 위기 상황이 아니고서는 막상 연구자가 막대한 시간과 노력, 비용을 투입한 연구 데이터와 결과를 무료로 공개하고 공유하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지난 10여 년간 진행된 과학계의 과열 경쟁은 오히려 이러한 협업과 개방을 저해해 왔다. 누군가는 과학 발전을 위한 지식 공유는 연구자로서 당연한 의무라 말할 수도 있으나, 연구자 개인의 입장에서는 자발적으로 데이터와 결과를 공개할 동인이 크게 없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오픈 사이언스’를 위해서는 연구자가 지식 공유 활동을 통해 학문 발전에 기여한 부분을 다양한 관점에서 평가하고 인정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에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기존 학술지와 달리 연구 데이터 자체를 발표하는 학술지가 등장했다. 논문이 출판될 때 논문 검증에 참여한 동료 연구자들의 명단이 함께 공개되기도 한다. 데이터 구축을 통한 기여나 논문 개선 과정에서의 기여를 인정하는 것이다. 다만 ‘오픈 사이언스’에 대한 논의는 주로 국제학술지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기에, 국내 학계에서는 아직 이에 대한 철학과 전략이 미흡하다.
유네스코는 2021년 11월 23일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제41차 총회에서 193개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오픈 사이언스’ 권고안을 채택했다. 이 권고안은 과학지식의 개방과 공유를 위해 각국이 무엇을 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과학기술 선도국인 우리나라도 ‘오픈 사이언스’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이는 우리가 당면할 미래의 또 다른 위기에 대응하는 준비 과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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