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재건축 아파트에 대한 매수세가 살아나며 집값이 들썩이고 있다. 주택시장 분석기관들에 따르면 이달 4일 기준 서울 아파트 값은 11주 연속 하락세를 멈추고 보합세로 돌아섰다. 교육 수요가 많은 강남3구와 대통령 집무실이 옮겨가는 용산구의 가격 상승폭이 컸다. ‘거래 절벽’ 상태였던 분당 일산 등 1기 신도시 아파트 가격도 오름세다. 금리 인상과 대내외 경기 불안으로 주춤하던 집값이 다시 불안 조짐을 보이는 것이다.
이처럼 서울과 신도시 재건축 아파트 가격이 오르는 것은 새 정부 들어 부동산 규제가 풀리면서 사업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 기간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완화, 분양가 상한제 개편, 대출한도 인상 등 규제 완화 공약을 쏟아냈다. 대선 직후 약 3주 동안 서울에서 거래된 149건의 주택 중 30%가 최고가에 매매된 것은 정책 기조 변화로 집값이 더 오를 것이라는 심리가 일찌감치 퍼져 있었다는 뜻이다.
공급을 간과한 규제 일변도의 주택정책 때문에 집값이 급등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공약에 얽매여 규제를 서둘러 푸는 것은 부동산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지난달 말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를 1년간 배제하는 조치를 발표했지만 정부가 이를 거부하면서 혼란은 더 커졌다. 인수위로선 양도세를 풀면 매물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지만 이번 감세 조치를 ‘버티면 된다’는 신호로 보는 다주택자도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냉탕과 온탕을 급하게 오가는 근시안적 부동산 정책은 실수요자의 피해만 키울 뿐이다.
민간 주도로 주택 공급을 늘리는 게 중요하다고 해도 모든 것을 일거에 뒤집는 속도전으로는 부작용을 감당하기 어렵다. 동시다발적 재건축으로 주변 집값이 급등할 수 있는 만큼 단지별로 사업에 시차를 두는 한편 시장 교란행위를 단속하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글로벌 금리 인상과 인플레이션이 겹친 ‘퍼펙트 스톰’ 위기에서 부동산 정책은 하나만 건드려도 전체 경제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준다. 공급과 수요, 물가와 경기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전략 없이는 한국 경제가 집값에 발목이 잡힌 채 또다시 ‘고통의 5년’을 보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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