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말 초등학교 5학년 A 양이 동급생을 흉기로 찔러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하지만 A 양은 법원에서 시설 위탁 처분을 받았다. 교도소 대신 복지시설이나 병원으로 보내는 것이다. A 양이 형사 처벌을 면한 것은 촉법(觸法)소년이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인 소년은 범죄를 저질러도 보호 처분을 받는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 후보 시절 촉법소년 연령 상한을 만 14세 미만에서 만 12세 미만으로 낮추겠다고 약속했다. 만 12, 13세도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11일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 교수,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를 만나 촉법소년 연령을 낮추는 방안에 대해 의견을 들었다.》
―촉법소년 연령을 낮추는 방안에 대해 여론은 찬반양론으로 나뉘고 있다.
이웅혁 교수=촉법소년에 해당하는 나이의 아이들은 자신이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악용한다. 실제로 현장에 가 보면 13세 소년들이 형사에게 ‘나 촉법이니까 빨리빨리 끝내자’고 한다. 또 14세라는 기준은 1953년에 만들어진 것인데 그때의 14세와 지금의 14세는 다르다. 범죄를 저질러도 교도소에 가지 않으면 정의의 관념에 반한다는 문제도 있다. 피해자는 몸도 마음도 다쳤는데 가해자는 일종의 ‘소년법 찬스’를 써서 아무 일 없다는 듯 돌아다니는 게 공정한가.
곽대경 교수=촉법소년 연령을 낮춘다고 해서 이 아이들의 재범을 예방하고 우리 사회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나. 우선순위가 틀렸다. 형사 처벌 연령부터 낮추는 것은 정치권이나 공직자들이 뭔가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인기 영합적인 쇼맨십이다. 이 문제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데이터와 자료를 바탕으로 논의돼야 하는데 지금은 여론몰이 형태로 진행되고 있어서 정치적으로 결정될까 우려스럽다.
―촉법소년 연령을 낮추는 것이 소년범들의 교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나.
이 교수=촉법소년 나이를 낮춘다고 해서 무조건 교도소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형사 처분 가능성을 열어두고 법관이 판단해야 하는데, 지금은 아예 형사 처분을 할 기회 자체가 봉쇄돼 있지 않나. 그 차이는 엄청나게 크다. ‘일정한 악행을 하면 분명한 불이익이 있다’는 신호를 주자는 것이고, 결국은 그게 아이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그냥 넘어가다 보면 만성적 범죄자의 길로 가게 된다.
곽 교수=어린 나이에 교도소에 갔다 오면 아이들이 오히려 엇나가게 되고 스스로에 대한 정체성이 굉장히 부정적이게 될 가능성이 높다. 낙인이 찍히는 것이다. 촉법소년 연령을 만 14세에서 12세로 낮추면 그만큼 형사 처분을 받는 숫자가 늘어나고, 어려서부터 전과를 쌓아 나가는 아이들도 늘 것이다. 소년범들이 상습적인 성인 범죄자로 전이되는 걸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무조건 강하게 처벌하는 게 능사인가.
―촉법소년들의 강력 범죄가 사회 이슈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실제로 범죄를 저지르는 연령이 낮아지고 흉악 범죄가 늘어나는 것인가.
이 교수=경찰 자료로는 촉법소년에 의한 강력 범죄가 5년 새 35% 정도 늘었다. 아이들 인구는 줄고 있는데 촉법소년의 강력 범죄가 늘어난다는 것은 범죄가 저연령화되고 있다는 증거다.
곽 교수=촉법소년 범죄 중에 살인, 성폭행, 강도 등 중범죄가 차지하는 비중은 5% 정도라는 통계가 있다. 예외적이고 극단적인 중범죄를 일반화해서 처벌을 확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아이들에게 어디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가 관건일 텐데 어떻게 봐야 하나.
이 교수=소년들이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괴롭힐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법망을 피해 나갈 수 있는지 하는 범죄지능은 예전보다 상당히 높아졌다. 이른바 행위 조정 능력, 사고 통제 능력은 70년 전에 비해서 상당히 발달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민등록상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면벌부(免罰符)를 주는 게 바람직한가.
곽 교수=소년들은 여전히 판단 능력이 미성숙하다. 자신의 행동이 무슨 의미가 있고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 아이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100% 그 아이에게만 책임을 묻는 게 적절한가. 또 아이들은 성인들보다는 변화의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까 교육과 선도에 자원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해외 국가들은 우리나라에 비해 형사 처벌이 가능한 연령이 낮나.
이 교수=일본에선 1997년 고베에서 14세 중학생이 초등학생을 끔찍한 방법으로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엔 형사미성년자 나이가 16세였다가 이 사건을 계기로 14세로 낮아졌다. 영국은 10세부터 형사 처벌이 가능한데 지난해 소년 살인범의 형량을 징역 12년에서 27년으로 높였다. 미국 일부 주에선 7세부터 처벌이 가능하다.
곽 교수=우리나라가 받아들인 법 체계는 독일, 프랑스 같은 대륙법 체계다. 독일에서는 형사미성년자가 14세로 돼 있는데 이를 낮출지 말지를 놓고 30년 이상 학계에서 논쟁을 벌이고 있다. 아직 독일에서 이 나이를 유지하고 있는 건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무거운 범죄를 저지른 촉법소년은 소년원으로 보내고 있는데 실태가 어떤가.
이 교수=소년원에 들어가면 대장 역할을 하는 아이가 군기 잡기 식으로 관리하고 나머지는 그 문화에 복속되는 게 문제다. 안 좋은 의미의 네트워크가 형성돼 소년원에서 나온 뒤에 함께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교육도 아니고 처벌도 아닌 중간 형태인데, 오히려 범죄소년(만 14세 이상∼19세 미만의 범죄자)으로 가게 되는 징검다리가 되고 있다.
곽 교수=소년원에서 학과 교육과 직업 교육을 하고 있다. 직업 교육은 노동시장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그런 기술을 배워야 하는데 많이 부족하다. 컴퓨터 교육도 옛날 프로그램으로 하고 있더라. 이런 부분부터 인력과 예산을 먼저 투입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찾고 보람도 가질 수 있다. ―소년범죄의 가해자들에 대해선 논의가 많이 이뤄지고 있는 반면 피해자들에 대한 관심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이 교수=예를 들어 스토킹 범죄 피해자에 대해선 보호를 해주는 조치가 있다. 그런데 소년법상에는 피해 회복, 피해자 보호에 대한 내용이 없다. 법의 사각지대라고 할 수 있다. 소년범죄 피해자를 구조하고 지원하도록 법을 개정하거나 새로운 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곽 교수=가해자가 진정 어린 반성을 하고 다시는 이런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야 피해자도 용서의 감정이 드는 것이다. 이를 회복적 사법이라고 한다. 가해자에게 개선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사회에 돌아올 수 있게 해야 가능한 일이다.
―연령 문제 외에도 촉법소년과 관련해서 논의해야 할 점이 많을 텐데 어떤 것이 시급하다고 보나.
이 교수=법원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금 법관들은 보직이 자주 바뀌는데 소년사건 담당 판사는 이 아이가 정말 개선과 교화의 가능성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더 강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를 심층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전문화돼야 한다. 보호관찰관 수도 부족하다. 보호관찰관 1명이 담당하는 소년이 선진국은 25명 정도인데 우리나라는 130명이다.
곽 교수=보호시설에 가서 심층면접과 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주로 종교시설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담당하는 형태다. 아이들이 학교에 안 가는 주말에는 식사 챙겨주는 것만 해도 버거운 일이다. 운영비가 한 달에 2000만 원 이상 들어가는데 법원에서는 1년에 300만 원 지원해준다고 하더라. 후원금에 의존하고 있는데 국가가 책임을 유기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서 맞춤형으로 교육, 상담, 치료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
경찰대를 졸업한 뒤 8년간 경찰관으로 근무했다. 이후 미국 미시간주립대에서 형사정의 분야 석·박사 학위를 받았고 미 털리도대 교수, 경찰대 교수를 지냈다. 법무부 형사사법통합정보체계 자문위원, 보건복지부 실종아동전문기관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
고려대 사회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미 하와이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한범죄학회 회장, 한국범죄심리학회 부회장, 동국대 홍보처장, 경찰청 과학수사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청소년비행론’ ‘현대사회와 범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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