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현지 시간) 미국 뉴저지주 저지시티에 있는 한 쇼핑몰. 지나가던 사람들이 통행로에 있는 붉은색 자판기를 신기한 듯 연신 들여다봤다. 지난달 초에 설치된 이 자판기의 이름은 ‘로보 버거’. 이 자판기는 즉석에서 햄버거를 자동으로 조리해 판매하는 기계다. 주문, 결제 등의 영역에서만 활발했던 무인화와 자동화의 바람이 조리 영역으로도 확대된 것이다.》
자판기 내 로봇 셰프는 냉동 상태인 고기 패티와 빵을 굽고, 케첩과 마요네즈를 뿌리고 햄버거를 상자에 넣는 과정을 홀로 처리한다. 가격은 6.99달러(약 8600원)다. 신용카드, 애플페이, 구글페이 등으로 결제할 수 있다. 원하지 않는 양념은 뺄 수도 있다.
기자도 기계의 안내에 맞춰 햄버거를 주문했다. 결제를 마쳤더니 조리를 시작하는 소리가 곧바로 들렸다. 약 7분이 경과하자 아래에 있는 출구를 통해 뜨끈한 햄버거 하나가 작은 상자에 담긴 채 나왔다. 고기 패티에 치즈가 있고 케첩이 뿌려져 있었다.
시민 켈리 씨는 “이것이 바로 미래 기술이냐. 그런데 우리 이러다가 일자리 잃는 것 아니냐”며 본인 또한 주문을 넣었다. 기자가 관리 직원에게 ‘햄버거 자판기가 미국에서 처음이냐’고 묻자 그는 “미국이 아니라 세계에서 최초”라며 “사람들의 반응이 아주 좋다”고 했다.
코로나19·구인난이 원인
최근 미국에서는 음식점 및 쇼핑몰 등을 중심으로 무인화와 자동화 바람이 거세다. 특히 외식업계에서는 조리, 서빙, 배달, 결제 등 전 영역에서 로봇이 활발하게 쓰이고 있다. 그 배경에 두 가지 요인이 자리하고 있다.
우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소비자들이 대면 접촉을 꺼리기 시작했다. 터치스크린, 무인자판기 같은 비접촉 거래 방식이 정착되면서 전염병 대유행(팬데믹) 종료 여부와 관계없이 대세가 된 것이다.
산업 현장의 역대급 구인난 또한 이런 현상에 한몫했다. 미 노동부에 따르면 올 2월 한 달 동안에만 435만 명의 근로자가 자발적으로 직장을 관뒀다. 반면 기업들의 구인공고는 1130만 건에 달한다. 코로나19 기간 정부 지원금에 따른 소득 증가, 대면근로 기피 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오프라인 일터에 복귀하는 것을 망설이고 있다.
이에 고용주 또한 로봇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미 로봇업계 연합체 ‘선진자동화협회(A3)’에 따르면 북미의 산업용 로봇 주문량은 지난해 사상 최고치인 3만9708대로 전년보다 28% 급증했다. 특히 기존에 로봇들을 자주 이용했던 자동차업계 외에도 식품, 소비재, 금속 업종에서 유난히 주문이 빠르게 늘었다. 로봇이 생산성이 높을 뿐 아니라 사람들이 꺼리는 고되고 반복적인 업무를 담당한다는 점을 많은 기업들이 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고용주-소비자-종업원 만족
외식업계의 무인 열풍은 고용주와 소비자 모두 유리한 점이 많다. 우선 고용주는 인건비와 직원 관리에 드는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다. 기계로 제조하는 만큼 품질의 균일성과 위생관리의 안전성 면도 사람보다 낫다는 평가 나온다. 고객 역시 적지 않은 팁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최근 찾은 뉴욕 맨해튼의 이스트빌리지에 있는 만두 프랜차이즈 식당. 외관은 여느 식당과 다름없지만 내부로 들어가니 언뜻 보면 지하철 사물함 같이 생긴 생소한 장치가 눈에 띄었다. 주문한 음식물을 가져갈 수 있는 무인 픽업박스다.
매장 내에 마련된 키오스크에서 음식 주문과 결제를 하고 몇 분 뒤 음식이 완료됐다는 메시지를 받으면 바코드를 스캔해 지정된 픽업박스에서 음식을 찾아가면 된다. 이 모든 과정은 비대면으로 이뤄진다. 식당은 매장 내 서빙 종업원을 둘 필요가 없어 경비가 절감되고, 고객도 음식값의 평균 15∼25%에 이르는 팁을 주지 않아도 돼 ‘윈윈’이다.
식당 매니저 조니에인절 델 토로 씨는 “조리는 주방에서 하고 음식이 준비되면 픽업박스에 음식을 넣고 손님에게 문자메시지로 알린다”며 “박스는 음식 종류에 맞춰 온도 조절이 돼 있다”고 안내했다. 반드시 매장에 와서 주문할 필요 없이 집에서 스마트폰으로 음식을 주문하고 와서 찾아갈 수도 있다. 이 회사는 이런 무인 매장을 뉴욕시 전역은 물론이고 뉴저지주 등 미 북동부로 확장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북동부 미시간주 앤아버의 식당 ‘미스김’을 운영하는 한국계 김지혜 씨는 지난해 배달 로봇을 시험 사용했다. 바퀴로 주행하는 작은 무인차량으로 뚜껑을 열고 음식을 넣은 뒤 닫으면 배정된 주소로 배달해준다. 김 씨는 “코로나19로 배달 로봇의 쓰임새가 매우 커졌다”며 고객들 또한 사람이 아닌 로봇이 음식을 전달해주면 감염 위험이 적어진다며 좋아한다고 했다.
특히 음식점 업주 입장에서는 ‘도어대시’ 등 사람이 하는 음식배달 앱서비스보다 수수료가 저렴하다는 점을 반긴다. 또 여러 곳을 한꺼번에 들르지 않고 한 번에 한 곳씩만 배달을 하니 음식이 식기 전에 제때 배달이 돼 손님들의 만족도도 높다. 인간 배달원처럼 갑자기 결근을 하는 일도 없고, 월급을 올려 달라고 조르지도 않는다.
로봇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간다고 느낄 법한 종업원들조차 반긴다. 고된 단순 업무를 로봇이 떠안아주면 여유를 갖고 고객을 응대해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프랜차이즈도 속속 로봇 도입
미 대형 프랜차이즈 전문점들도 로봇 도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멕시칸 음식 전문 체인 ‘치폴레’는 최근 간판 메뉴인 토르티야칩의 제조를 로봇에 맡기기로 했다. 치폴레와 파트너십을 맺은 유명 로봇업체 미소로보틱스의 마이클 벨 최고경영자(CEO)는 “최근의 구인난은 조만간 사라질 현상이 아니다”라며 로봇을 통한 자동화가 해법이라고 주장했다.
미소로보틱스는 유명 햄버거 체인 ‘화이트 캐슬’에도 감자튀김을 만들고 햄 패티를 굽는 로봇 ‘플리피’를 납품하고 있다. 베이커리 카페인 파네라 브레드 역시 미소로보틱스의 자동 커피 추출 기계의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주문, 조리, 배달 등에서 100% 완전한 자동화가 이뤄지려면 갈 길이 멀다는 지적도 있다. 음식배달 로봇만 해도 제대로 배달을 수행하는지 체크하기 위해 회사 직원이 뒤에서 일일이 따라다닐 때도 많다.
그럼에도 외식업계 전반의 무인화 열풍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됐다. 상시 직원을 두지 않아도 되고 24시간 영업이 가능해 인건비를 줄이고 수익성을 대폭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상품 진열대와 결제 키오스크를 놓을 공간만 있으면 운영할 수 있어 소자본 창업도 가능하다. 코로나19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지만 전염병 대유행의 종식과 별개로 로봇이 만들어준 음식과 커피를 마시는 시대는 이미 도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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