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정오 서울 종로구 북악산(백악산) 법흥사 터. 평일 점심시간인데도 빼곡히 몰린 등산객들 사이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5일 북악산 남측 탐방로 개방 행사 때 문재인 대통령 부부가 앉아 논란이 된 초석(礎石·주춧돌)을 포함해 18개 초석들 위에 기와 조각과 돌, 불상이 올려져 있었다. 이곳을 몇 차례 찾았다는 남성은 “대통령 논란 직후 ‘사진 명소’가 돼 방문객들이 초석에 떼 지어 앉아 사진을 찍곤 했다”며 “이를 보고 심기가 불편해진 누군가가 이런 일을 한 게 아니겠느냐”고 했다. 이날 오후 문화재청은 법흥사 터 주변에 가림 막을 치고 초석 위에 올린 기와 조각 등을 치웠다.
앞서 8일 조계종은 “문화재청장과 국민소통수석이 비(非)지정 불교 문화재에 대해 천박한 인식을 공개적으로 드러내 사회적 논란을 가중시켰다”며 이들의 사퇴를 요구했다. 문화재청이 법흥사 터 초석은 지정 또는 등록문화재가 아니라는 입장을 밝힌 데 따른 반박이었다.
문화재계에서는 논란이 된 초석들이 문화재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부정적 의견이 많다. 지난해 4∼11월 학계 전문가들의 북악산 남측 탐방로 일대 조사 결과를 담은 ‘백악산의 자연유산과 역사문화 종합 학술보고서’는 “법흥사 터 초석 20개는 역사적 건축물에서 느껴지는 단아하고 예스러움을 찾기 어렵다는 점을 봤을 때 1955년 이후 불전 조성 준비 과정에서 마련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결론 내렸다. 1955년 청오 스님이 법흥사 터에서 불전을 증축할 때 사용한 일종의 ‘건축 부재’라는 것이다. 현대에 지어진 이 사찰은 1968년 1·21 무장공비 침투 사태로 북악산 출입이 금지되면서 사라졌다. 현장을 조사한 한 전문가는 “초석 관련 역사 기록이 없어 근현대 문화재로 볼 여지도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번 논란에서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생각은 없다. 다만 이를 계기로 문화재를 보존하면서도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을 고민해 봤으면 한다. 설사 법흥사 터 초석들이 지정문화재라고 하더라도 시민들을 위한 ‘쉼의 공간’으로 활용할 수는 없을까.
수년 전 취재차 터키의 고대 도시 히에라폴리스의 온천 수영장을 갔을 때 놀란 기억이 있다. 고대 수영장(antique pool)으로 불리는 이곳에는 2500년 전 로마시대 기둥과 조각상들이 바닥에 깔려 있다. 692년 큰 지진으로 무너진 고대 도시유적 위에 물이 들어차 독특한 온천장이 만들어진 것. 우리나라였다면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수장된 기둥과 조각상을 끌어내 보존 처리에 들어갔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터키 정부는 오히려 이곳을 시민들이 유적과 함께하는 휴식공간으로 조성해 세계적 관광 명소로 만들었다. 만약 이것이 심각한 문화재 파괴였다면 유네스코가 히에라폴리스를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수천 년 된 고대의 기둥을 밟으며 힐링하듯, 초석만 덩그러니 남은 절터에 앉아 무념무상의 가치를 되새기는 건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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