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세상서 성공 어려운 책방 창업
‘생각의 힘’ 키우는 콘텐츠로 승부수
개인도 ‘나만의 가치’ 깊이 고민해야
이제 마스크도 벗나 했지만 앞으로도 얼마간은 더 써야 하는 모양이다. 그래도 다음 주부턴 사적 모임 인원과 영업시간 제한을 전면 해제하는 등 2년 넘게 유지돼 온 사회적 거리 두기가 끝이 난다. 휴∼ 다행이다. 그동안 참 힘들었다. 모두의 고생이 컸지만 특히 자영업자들은 죽을 맛이었다. 나 또한 책방을 시작한 지 7년 차 자영업자로 같은 사정에 처했고 어려움을 겪었다.
요즘 책방들은 책만 팔지 않는다. 커피 등 음료도 판다는 뜻이 아니다. 그곳에선 책만 읽어서는 결코 알 수 없는 경험들을 다채롭게 제공한다. 당장 우리 책방만 해도 책을 낸 저자와 독자가 직접 만나는 북 토크는 기본이고 ‘파친코’ 등 영어로 쓰인 소설을 원문으로 읽거나 논어 같은 고전을 배우는 수업, 아티스트를 모셔서 평소엔 듣기 어려운 크리에이티브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등 다채로운 콘텐츠를 마련하고 있다. 우리 고객 한 분은 이렇게 말할 정도다. 책방의 저녁은 날마다 새로운 프로그램이 펼쳐지는 뮤지컬 공연장 같다고.
이런 일을 기획하고 준비하자면 많은 수고가 들어갈 텐데 왜 이런 일을 벌이는 걸까? 우선 생존의 이유가 있다. 우리는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다. 얼마 전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한국 사람들은 일생 동안 34년을 인터넷을 하며 보낸다고 한다. 미국, 영국, 프랑스 같은 나라들보다 훨씬 길다. 웬만한 필요는 거의 다 온라인상에서 충족되는 셈이다. 도서도 온라인 구매가 점점 더 늘고 있다. 사정이 이러니 우리 같은 오프라인 책방, 동네 책방들은 책 판매만으론 임차료 내기도 어렵다.
이래서였을까? 내가 책방을 하기로 마음먹고 가장 오래 성심을 다해 준비한 것이 우리 책방의 ‘존재의 이유’를 찾는 일이었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책방이 웬 말이냐고, 적은 나이가 아닌데 이제 실패하면 만회할 시간조차 없다며 여러 사람들이 뜯어말렸다. 그랬음에도 시작한 일이니 여봐란듯이 잘해내고 싶었다. 하지만 잘하고 싶다고 해서 잘되는 건 아니지 않나. 방법을 찾아야 했는데 나는 이 질문들로부터 시작했다. 이미 세상엔 대형 서점도 있고 온라인 서점도 있고 또 동네 서점도 있다. 그런데 왜 또 우리 책방이 존재해야 할까? 고객은 왜 다른 데가 아니라 우리 책방을 찾아야 할까? 또 우리 책방이 존재함으로써 세상은 이전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는가?
실은, 광고회사 시절부터 이 생각을 갖고 일했다. 이 세상의 모든 기업, 제품, 브랜드는 ‘존재의 이유’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고객이 왜 경쟁사 제품과 브랜드가 아니라 자신의 회사를 선택해야 하는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제 내가 답할 차례였고 나는 다음과 같은 답에 도달했다. 아는 것이 힘이던 시대로부터 생각이 힘인 시대가 되었다,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가치들은 생각하는 힘으로부터 나오고 일터에서의 삶은 문제 해결의 연속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지금까지의 방식이 더는 통하지 않는 낯선 곳으로 나아가고 있다, 상상력, 창의력, 혹은 기획력, 문제 해결력 등 생각하는 힘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데 우리 책방은 책을 통해 지금 시대에 가장 중요한 자산인 ‘생각의 힘’을 북돋우고 퍼뜨리겠다, 하나의 생각이 또 하나의 생각과 만나 깊고 다양한 생각의 숲을 이루는 ‘생각의 숲’이 되겠다고.
이 문장들 속에 우리가 책방을 하는 이유, 고객이 우리 책방을 찾을 이유, 우리 책방이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담겨 있고 우리는 이 생각을 북극성으로 삼아 책을 큐레이션 하고 여러 프로그램을 궁리하고 있다. 아직까지 망하지 않고 7년째 하고 있는 걸 보면 우리 책방의 존재의 이유에 납득한 고객들이 많이 계시지 않나 짐작한다.
이쯤에서 여러분께 한 가지를 제안한다. 일하는 분들, 특히 책임을 맡고 있거나 남보다 많은 기회를 누리는 분들은 스스로의 ‘존재의 이유’를 묻고 새로이 해 보시라. 겸손해지거나 착해지라는 뜻이 아니라 스마트해지라는 뜻에서다. 오래도록 잘하는 방법으로서, 또 기회를 준 많은 분들께 그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해 보이라는 뜻에서다. 물으면 찾게 되고 궁리하게 되며 새로이 하게 되는데 오래도록 잘하는 길은 종종 그 끝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특히 공직을 맡은 분들은 이 질문을 가까이 하시라. 하고많은 사람 중에 왜 내가 이 일을 맡아야 하고 맡을 만한지, 어떤 가치를 세상에 내놓을 것인지 깊이 자문자답해 보시라. 대한민국 국민 노릇 하기가 너무 힘들다.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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