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27일. 대선 승리 직후 이명박(MB) 대통령 당선인은 자신이 다니던 소망교회에서 열린 당선 축하 예배에 참석했다. 이 당선인은 “국민을 섬기며 잘해 보이겠다”며 이같이 다짐했다. 겸손한 그의 태도에 많은 사람들이 갈채를 보냈다.
그 다짐대로 이명박 정부 인수위는 ‘일하는 인수위’, ‘섬기는 인수위’를 표방했다. 이 당선인은 국민을 위해 쉴 새 없이 일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1월 1일에도 출근했다. ‘월화수목금금금’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청계천 신화를 이뤄낸 추진력답게 쾌도난마식 행보가 돋보였다. 전남 목포 대불공단의 전봇대가 그의 언급 이틀 만에 뽑혔다. 사회 곳곳을 틀어막고 있는 난제들이 확 뚫릴 것 같았다. 새 권력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집중되던 시기, 그의 시원시원한 행보에 호평이 쏟아졌다.
그러나 한반도 대운하 건설, 고교 영어 몰입교육 등 서민들의 삶과 동떨어진 뜬금없는 ‘혁신안’이 이어지면서 국민과의 거리가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다. 실력이 검증된 전문가 그룹을 추구했던 그의 첫 내각은 ‘강부자’(강남 땅부자)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논란에 휩싸였다.
이 당선인 스스로 키운 위기였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센 사람은 대통령이 아니라 대통령 당선인이다. 청와대 참모들은 때때로 대통령에게 다른 의견을 내곤 한다. 의견 충돌로 청와대를 스스로 박차고 나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인수위에선 누구도 당선인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다. 섣부른 조언 한마디 때문에 한 달 후면 갈 수 있는 장관, 차관, 청와대 참모 자리를 걷어찰 순 없기 때문이다. 인수위 기간 동안 당선인 주변에서 합리적 토론, 민주적 소통은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다.
MB의 시원시원한 결단이 독단으로 비치기 시작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새 정부 출범 후 두 달 만인 2008년 4월 광우병 사태가 터졌다. 미국산 쇠고기 자체보다 국민을 설득하고 여론을 수렴하는 정교한 정책수립 과정이 생략된 것이 문제였다. “내가 미국에서 많이 먹어봐서 잘 안다”는 식으로 내려진 정책결정은 많은 이들의 반발을 불렀다.
문재인 정부 역시 4년 내내 “우리는 옳다”는 독선에 사로잡혀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대한민국은 문재인 보유국”이라며 뿌듯해했던 것이 불과 1년 전이다.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이 낳은 현실은 부동산값 폭등이었고, ‘벼락거지’의 양산으로 민주당의 지지 기반인 청년, 중산층, 서민들은 한순간에 현 정부에 등을 돌렸다.
이 전 대통령은 취임 8개월 후인 2008년 10월부터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 라디오 연설을 시작했다. 이 전 대통령은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서 “국민과의 소통에 목이 말랐다”고 했다. 그는 임기 5년 중 109번의 라디오 연설을 했지만 한번 ‘불통’으로 짜인 프레임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변화의 의욕이 넘쳐 주변을 보지 않고 과속하게 되면 순식간에 독주·독선이라는 과거 정권의 전철을 밟게 된다. 지난달 18일 출범한 윤석열 인수위는 이제 절반의 시간이 지나갔을 뿐이다. 5월 10일 출발점 앞에 서기 전에 다시 한번 제대로 점검을 해야 한다. 5년 금방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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