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수사체계는 검찰개혁을 국정과제로 삼았던 문재인 정부에서 그 골격을 갖춰 시행한 지 1년여가 지났다. 검찰을 수사의 주재자로, 수사경찰을 검찰의 연장된 손으로 삼는 수사체계는 독일과 일본의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의 확고한 입장이다. 한국도 70여 년간 이 제도를 근간으로 삼아 왔다.
지난해 초부터 개정 시행된 현행 형소법과 검찰청법에 따르면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관계는 종전 지휘·감독에서 대등한 협력관계로 변모했다. 한국 법체계에서 상전벽해에 견줄 만한 큰 지각변동이다. 검사 수사지휘권이 폐지되고, 사법경찰은 1차 수사종결권을 갖게 됐다. 또 수사권과 기소권을 갖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도 새로 탄생했다. 검사의 직접수사 범위는 6대 중대범죄(부패·경제·선거·공직자·방위사업·대형 참사)에 국한된다. 그런데 정권 이양이 한 달도 안 남은 지금 172석의 거대 여당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 속도전에 돌입했다. 15일 여당 의원 전원 명의로 발의한 형소법 및 검찰청법 개정안은 검찰 수사권을 경찰과 공수처 소속 공무원에 대한 직무상 비위 수사만 남겨놓고 다 삭제했다. 검찰 보완수사도 필요시 경찰을 통해서만 할 수 있게 했다. 법 시행 시점에서 검찰이 수사 중인 사건은 지방검찰청 또는 지청 소재지 관할 지방경찰청이 승계하게 했다.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보통사람 눈에 여당의 이러한 입법 행태는 부작용 소지가 많은 졸속입법이며 객관성을 잃은 처사로 보인다. 국민의 자유와 안전에 직결된 법률을 개정하면서 전문가도 이해하기 힘든 안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모습이야말로 병리적 입법 행태의 전형이다.
원래 수사는 소추와 상호 유기적으로 연계돼 있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중 27개국은 검사의 직접수사 기능을 인정하고 있다. 검수완박 법안은 선진국 형사사법제도 흐름에도 역행하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라 할 수 있다.
현행 수사체계가 출범한 지 1년 남짓인데 수사 절차는 복잡해지고, 사건 처리는 지연되고, 검사의 보완수사 어려움은 가중됐다는 것이 생생한 현장 목소리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이와 관련된 개선을 제쳐놓고, 제도 안착에 필요한 시간도 아랑곳없이 질풍노도처럼 휘몰아치는 검수완박 입법은 정상적 입법 논리로는 설명이 잘 안 된다.
검찰은 중요범죄 대응의 공백으로 생겨날 국민 불편, 수사기관 난립에 따른 실적 경쟁과 중복수사 위험, 실체적 진실 발견과 정의 실현이라는 검찰제도 본질을 부인함으로써 야기될 위헌 소지 등을 들어 전면 반대에 나섰다. 또 진보와 보수를 넘어 대한변호사협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참여연대, 국민의힘, 정의당, 형사소송법학회 등 법조계와 학계, 정치권과 시민단체가 반대에 동참하고 있다.
현명한 입법자라면 현실 기반을 면밀히 살피고 현실에 맞는 형사사법 체계가 무엇인지 공론의 장에서 숙의하는 일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 설익은 제도를 당리당략에 따라 섣불리 저질러 놓고, 시행착오의 부담을 오롯이 국민에게 돌리는 근시안적 입법 행태는 국민에 대한 갑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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