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급 공채 경쟁률 역대 최저 왜?
코로나 사태로 업무 늘었지만, 9급 초임 급여, 최저임금 수준
더 내고 덜 받는 연금개혁… 안정적 노후 보장 장점도 흔들
MZ세대, 경직된 조직문화 기피… 주니어 공무원 59% “이직 고민”
《“월급날이 되면 4년 전 대기업을 퇴사하고 노량진으로 향했던 선택을 되짚어 봅니다.”
충남지역 공무원으로 일하는 조모 씨(36)는 대학 졸업 후 정보기술(IT) 분야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2년 만에 사표를 던지고 ‘공시(公試)’에 도전했다. 정년이 보장되지 않는 사기업에선 미래가 불투명했기 때문. 2년간 노량진에서 공부에 매진하다가 드디어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하지만 그는 요즘 마음이 복잡하다. 첫 월급은 약 180만 원으로 대기업에서 받던 월급의 절반 수준. 조 씨는 “결혼을 앞두니 월급이 적은 게 현실적인 문제가 됐다”고 털어놨다.
국가직 9급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올해 역대 최저로 떨어졌다. 2011년 93.3 대 1로 정점을 찍었던 경쟁률은 올해 29 대 1 수준이었다. ‘신의 직장’, ‘철밥통’으로 불리던 공무원이 어쩌다 이렇게 외면받게 됐을까.》
○“믿었던 공무원연금마저 줄었다”
18일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올해 국가직 9급 공무원 공개경쟁 채용 시험 평균 경쟁률(지원자 기준)은 29.2 대 1이다. 연도별 경쟁률은 2013년 74.8 대 1, 2015년 51.6 대 1, 2017년 46.5 대 1, 2019년 39.2 대 1로 내려갔고 2020년 37.2 대 1로 더 추락했다. 인사혁신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지원자 수가 줄어든 영향”이라고 했다. 하지만 경쟁률이 10년 넘게 내리 줄어드는 현상을 해석하기엔 역부족이란 평가가 나온다.
젊은 공무원들은 경쟁률 하락 원인으로 ‘낮은 연봉’을 꼽는다. 인사혁신처가 밝힌 올해 9급 신입 공채 공무원(1호봉)의 월급은 168만6500원이다. 지난해(165만9500원) 대비 1.6%가량 올랐다. 여기에 밥값 명목 월 14만 원, 직급 보조비 약 15만 원 등이 매월 고정적으로 지급된다. 추가 수당을 제외하고 법정 근로 시간만 계산하면 월급은 세전 기준 198만1500원이다. 최저임금(9160원)으로 한 달간 주휴시간을 포함한 법정 근로 시간(209시간)을 일했을 때 받는 세전 월급(191만4440원)과 비슷하다.
공무원들은 급여가 낮아도 공무원연금이 있어 든든했다. 수령액이 국민연금보다 높은 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무원연금 기금이 고갈될 위기에 빠지자 공무원연금은 수술대에 올랐다. 박근혜 정부 때였던 2016년 공무원연금법이 개정됐다. 개정의 핵심은 더 내고 덜 받는 방향이다. 연금 부담률은 개정 전 기준소득월액의 7%였지만 2020년 9%로 올랐다. 연금 지급률은 재직 1년당 1.9%에서 2035년 1.7%까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9급으로 임용돼 최근 8급으로 승진한 한 공무원은 “믿었던 연금마저 갈수록 줄고 있다”며 “앞으로 계속 연금 개혁이 이뤄질 텐데, 공무원의 최대 장점인 안정된 노후도 보장받을 수 없게 됐다”라고 했다.
○ 경직된 공직사회 문화에 거부감 커져
9급 임용 10년 차인 서울의 한 구청 공무원 박모 씨(38)는 인사과 소속이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 초기인 2020년 여름 내내 관할구역 노래방과 체육시설을 매일 돌아다녀야 했다. 방역 단속 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재난 상황에서 방역 업무는 공무원의 의무이지만 업무량이 과도하게 늘었다. 박 씨는 “주말도 없이 일하다가 결국 과로로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며 “공무원의 격무와 경직된 조직문화는 주니어 공무원들의 가장 큰 고민”이라고 했다.
격무와 경직된 조직문화는 박 씨만의 고민이 아니다. 행안부가 2020년 8월에 1980∼2000년생 주니어 공무원 1810명을 설문한 결과 ‘이직을 고민한 적이 있다’고 답한 비중은 58.6%로 절반을 넘었다. 그 이유로는 조직문화에 대한 회의감(31.7%), 일하는 방식에 대한 회의감(31.0%), 지나치게 많은 업무량(14.1%)이 대부분이었다.
실제 주니어 공무원들의 이런 인식은 퇴사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양기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인사혁신처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말 기준 퇴직한 임용 5년 미만 공무원은 9258명이었다. 2017년에 비해 79% 늘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비인기 분야 공무직에선 구인난이 생겨난다. 전북도가 지난달 수의직 7급 공무원 27명을 채용하려고 공고를 냈지만 단 2명이 응시했다.
○“국가, 국민이 존재하는 한 마지막까지 남을 직업”
9급 공무원을 비롯한 공무원 전체에 대한 시선도 달라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사회조사결과’에서 13∼34세가 가장 근무하고 싶어 하는 직장은 대기업(21.6%)으로 나타났다. 이어 공기업(21.5%), 국가기관(21%) 순이었다. 2006년부터 줄곧 ‘선호 직장 1위’였던 공무원이 대기업에 밀린 것이다.
전문가들은 자유롭고 개방된 문화를 추구하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에겐 경직된 공무원 사회의 문화가 거부감을 키울 수 있다고 분석한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기획재정부 예산실은 신입 공무원들이 선망하는 부서였지만 몇 해 전부터는 일찍 퇴근하는 세제실이 1순위”라며 “MZ세대의 공직에 대한 가치관이 많이 변하고 있지만 조직이 이를 아직 잘 따라가지 못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공직사회가 정치권력에 휘둘리는 분위기도 한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흔히 공무원들은 차기 정부가 출범하면 기존 정책이 대부분 재검토될 것으로 본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권에서 나타난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늘공’(직업 공무원)을 지배하는 모습도 공무원들의 사기를 낮춘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처 수장이나 공공기관장의 인사권과 재량을 강화해야 공무원들의 사기가 높아질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공직사회가 정치 바람을 타지 않고 능력 있는 공직의 인재를 키우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얘기다.
최근 과도하게 비대해진 공무원 조직을 축소하고 효율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과도하게 비대해진 조직을 축소하고 공무원의 전문성을 높이는 역량 강화 교육을 대대적으로 진행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공무원 조직의 급격한 개혁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안정감 있게 개혁이 진행돼야 실패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윤경준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무원의 사기가 높았던 적은 없다”며 “안정된 공직사회가 사회를 안정적으로 끌고 갈 수 있기 때문에 급격한 개혁은 오히려 사회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라고 조언했다.
공무원들은 공시 경쟁률이 떨어지는 현상을 ‘비정상의 정상화’로 보기도 한다. 그간 공무원 수가 너무 늘고 경쟁률이 지나치게 높았다는 것이다.
중앙부처 한 고위직 공무원은 “국가와 국민이 존재하는 한 마지막까지 남을 직업은 공무원”이라며 “성과가 중요한 요즘 시대에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공무원 가치는 대체 불가능한 영역”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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