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오피스와 낡은 사무실[2030세상/박찬용]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19일 03시 00분


박찬용 칼럼니스트
박찬용 칼럼니스트
회사를 나와 얼떨결에 독립한 지도 1년 반이 넘었다. 그동안 사무실에 대해 종종 고민했다. 코로나19 기간에는 재택근무도 많았고, 내 일은 취재나 회의 등 외근이 많아서 사무실이 없어도 일에 지장이 없었다. 그러나 혼자 일하다 보니 직장과 사무실은 단순 설비를 넘어 사회적 자아의 지정석임을 깨달았다. 나도 그 지정석에 익숙해진 채 지난 십수 년의 사회생활을 해 왔다. 내 자리가 없어지자 뿌리 없이 물에 떠 있는 것 같았다.

그리던 사무실의 조건이 있었다. 혼자니까 좁거나 불편한 건 상관없었다. 책이 꽉 찬 책장 같은 광경에 스스로를 밀어 넣고 싶기도 했다. 보통 내 업계 사람들은 강남이나 성수에 사무실을 낸다. 꿈에서도 가고 싶지 않았다. 강남은 돈 쓰러 가는 곳이지 벌러 가는 곳이 아니다. 성수는 사무지역으로 개발되지 않아 주차가 굉장히 어렵다. 평일에 주차장 입구에서 50분 대기한 적도 있다. 사무실 촌에 자리를 잡고 직장인풍 점심 식당에 가고 싶었다.

요즘 내 주변 젊은 사람들은 창업 사무실로 공유 오피스도 많이 쓴다. 편하니까. 간단한 절차를 거쳐 계약이 끝나면 PC 한 대로 바로 내 사무실을 차릴 수 있다. 화장실 청소도, 사무실 쓰레기통 비우기도 남이 해준다. ‘라운지’라 부르는 공용 탕비실도 있고, 입주자끼리 ‘밍글링’이라 부르는 상호 친교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커피나 맥주를 무료로 주거나 요가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실제로 공유 오피스를 써 본 주변 사람들은 편하고 깨끗해서 좋다고들 했다.

따져 보니 나는 공유 오피스가 내키지 않았다. 우선 비쌌다. 광고 문구 ‘서울 중심가 40만 원’의 실체는 내 지정석 하나 없는 공용 공간 이용권이다. 내 책상 하나 놓고 주차 옵션을 붙이면 월 임대료는 100만 원을 훌쩍 넘긴다. 그 정도면 오래되고 잘 관리된 소형 사무실을 충분히 구할 수 있다. 기회가 되어 써 보니 불편하기도 했다. 입주자와 나눠 써야 하는 공용 설비와 공간이 너무 많았다. 지인도 타인도 아닌 같은 층 다른 회사 사람들도 편치 않았다. 비용 절감 때문인지 책상에 휴지통이 없고 공용 공간의 대형 휴지통만 있었다. 젊은이 분위기를 내려 인테리어에 멋을 부렸으나 자리 간격은 너무 좁아 움직이기 어려웠다. 내 기준엔 그 가격을 내고 받을 서비스가 아니었다.

공유 오피스는 오늘날 ‘스타트업 비즈니스’의 한 전형이기도 하다. 공유 오피스의 디테일을 따져 보면 혁신적인 건 쉽게 이용하고 결제할 수 있는 앱 서비스 정도다. 작은 사무실을 얻고 운영하는 수고를 대행업체가 수행하고 그 수수료가 사용자의 월세에 붙는 구조, 100원짜리를 10개로 나누고 각각 12원에 파는 구조다. 나는 그 구조에 내 소중한 돈을 내며 스타트업 창업자 기분에 휩싸일 생각이 없었다.

나는 현실적인 방법을 택했다. 구도심을 걸어 다니며 공실을 보고, 인터넷 매물로 올라오기 전의 낡은 사무실을 구했다.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 꼭대기 아래층, 18년 동안 어느 할아버지가 사용한 사무실이다. 계약서를 써주는 건물 관리소장님의 필체는 옛날 서예 같았다. 현실에 있음을 실감했다. 늘 필요한 기분, 내가 좋아하는 기분이었다.
#공유 오피스#낡은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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