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 회복, ‘선인의 지혜’ 빌리면 어떨까[세계의 눈/오코노기 마사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20일 03시 00분


최근 집권 자민당 안에 강제징용의 현장인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지원하는 의원연맹을 발족하고 이 모임의 
고문을 맡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강제징용, 위안부 등을 둘러싼 한국과 일본의 시각 차이가 여전한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24일 일본에 정책협의대표단을 파견하겠다고 밝혔다. 도쿄=AP 뉴시스
최근 집권 자민당 안에 강제징용의 현장인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지원하는 의원연맹을 발족하고 이 모임의 고문을 맡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강제징용, 위안부 등을 둘러싼 한국과 일본의 시각 차이가 여전한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24일 일본에 정책협의대표단을 파견하겠다고 밝혔다. 도쿄=AP 뉴시스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명예교수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명예교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일한(한일) 관계 회복에 의욕적이다. 윤 당선인은 선거 운동 기간 중 문재인 정부의 대(對)일본 정책을 비판하면서 현안의 포괄적 해결, 정상 간 셔틀외교 재개, 김대중-오부치 파트너십 공동선언 재확인 등 구상을 내놓았다. 미국에 이어 이달 24일에는 일본에도 정책협의대표단을 파견한다.

외교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박진 의원을 비롯해 윤 당선인을 뒷받침하고 있는 외교안보 분야 측근 및 브레인들은 모두 열성적인 한미일 제휴론자들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5월 하순 일본을 방문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한미 정상회담을 실현하려 한국을 먼저 방문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한미일 공조의 좋은 사례가 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로 한미일 제휴는 시대적 요청이 되고 있다. 사실 한미일 제휴 이외의 어떤 방법으로 냉전의 재도래를 떠올리는 최근의 세계정세 및 지역 정세 변동에 대응할 수 있을까. 특히 북한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교묘히 이용해 자신들의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려고 한다.

다른 얘기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공격을 시작한 2월 24일 TV 연설을 통해 ‘러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핵보유국 중 하나’라고 밝히면서 사흘 뒤인 27일 러시아 핵 억지부대에 특별한 임전 태세에 들어가라고 명령했다. 미국의 개입을 막기 위해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의 이달 4일 담화도 이와 유사하다. 남북간에 전쟁이 발생하면 초기에 핵 전투 무력을 동원해 한국군을 궤멸시키겠다고 호언했다. 북한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핵 억제론을 배웠을 것이다. 러시아와 북한의 향후 상호간 접근이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일본은 왜 윤석열 당선인의 이니셔티브에 적극 호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한국 측의 그랜드 디자인에 비해 일본의 우려는 매우 구체적이다. 특히 한국 사법부에 대한 불신, 구체적으로 ‘징용공’(징용 피해자의 일본식 표현) 문제의 최종 사법처리에 대한 우려가 압도적으로 크다.

주지하듯이 옛 징용공을 원고로 하는 한국 내 소송은 대법원 판결이 확정되어 몇몇 일본 기업의 자산이 압류된 단계에 있다. 남은 것은 이를 현금화하려는 최종 조치뿐이다. 현금화 조치가 집행된다면 그동안의 행정부 노력은 모두 파탄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본 정부는 그 악몽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징용공 문제는 한일 청구권 경제협력 협정의 해석 분쟁과 다름없다. 대법원뿐 아니라 이낙연 전 국무총리도, 문재인 대통령도 그렇게 지적해 왔다. 그렇다면 그렇게 처리하면 어떨까. 청구권 협정 3조는 ‘해석 분쟁’을 외교 경로로 해결하지 못할 경우 중재위원회에 회부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중재위는 한일 양국 정부가 지명하는 각 1명의 위원 외에 쌍방이 합의하는 제3의 외국인 위원으로 구성된다. 한번 회부되면 양측 정부는 그 3인 위원회의 중재안에 따를 수밖에 없다.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이제 이 규정을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선인의 지혜다.

이 해결 방법에는 분명한 이점들이 있다. 첫째, 양국 정부가 중재위를 구성하면 한국 사법부도 그 작업을 지켜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정 기간이나마 판결 집행이 실질적으로 정지된다.

둘째, 제3자를 포함한 중재위가 조직되고 중재안이 제시되면 그에 대한 야당 및 국민의 반대는 최소화될 것이다. 사실 그것은 ‘중재’이지 한일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양보의 결과가 아니다.

셋째, 그 사이에도 외교적 관계 복원을 추진할 수 있다. 중재안을 기다리는 과정에서 양측 정상이 상호 방문해 관계 개선을 기정사실화해 나가면 된다. 일본 측도 한국의 노력에 최대한 협조할 것이다.

3인위의 중재를 통해 어느 정도 중재안이 한일 외교 당국에 제시되면 구체적인 해결책 마련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이 2019년 제시한 ‘기억·화해·미래재단 법안’이 하나의 토대가 될 것이다. 일본 측은 이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여소야대가 될 한국 국회가 이를 부결시킬 수도 있다. 그럴 경우 한국 정부가 ‘대위변제’를 해 잠정적으로 ‘현상동결’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윤석열#한일관계 회복#선인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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