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중현]대한민국 포퓰리즘史 3대 장면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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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에 기승한 인기영합주의
퍼주기 경쟁에는 좌·우도 실종

박중현 논설위원
박중현 논설위원
#1. “40%의 근거가 뭡니까?” 2019년 4월 16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앞으로도 국가채무비율 40% 선을 유지하겠다”고 보고하던 홍남기 경제부총리에게 문재인 대통령은 이런 질문을 던졌다. 누가 봐도 돈을 더 쓰기 위해 나랏빚을 늘리자는 주문이었다. 건국 이후 지켜지던 ‘재정은 국가경제 최후의 보루’라는 정부 재정운영 철학이 이 질문 하나로 무력화됐다.

#2. “국민들에게 힘과 위로를 드리기 위해 헌정사상 처음으로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결정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21대 국회의원 선거 하루 전인 2020년 4월 14일 국무회의에서 이렇게 밝혔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작된 지 3주 만에 소득하위 70% 국민에게 돈을 나눠주기로 한 것이다. 선거는 더불어민주당의 완승으로 끝났고, 나중에 대상이 전 국민으로 확대돼 4인 가족 기준 100만 원씩 지원금을 받았다.

#3.
“새 정부 출범 100일 동안 50조 원을 투입해 정부의 영업제한으로 인한 피해를 보상하겠습니다.” 작년 11월 8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이렇게 약속했다. 이 밖에도 병사 월급 200만 원, 기초연금 10만 원 인상 등 공약 이행에 5년간 266조 원을 쓰겠다고 했다. 취임을 19일 앞둔 지금까지 재원 마련 방안은 나오지 않았다.

최빈국에서 시작해 70여 년 만에 선진국 문턱을 넘었던 한국 경제의 쇠락 원인을 찾아 누군가 나중에 ‘대한민국 포퓰리즘의 역사’를 쓴다면 반드시 포함될 3개 장면이다. 한국은 후발국 중 드물게 큰 재정위기를 겪지 않았던 나라다. 좌파든, 우파든 역대 정부는 “국민이 원하는 건 다 주라”던 그리스 파판드레우 정부처럼 결정적 레드라인을 넘지 않았고, 포퓰리즘 정부란 비판은 모욕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랬던 한국이 3년 만에 확 달라졌다.

첫 장면의 주인공으로 꼽히는 게 문 대통령으로선 억울할 수도 있겠다. 복지 확대 약속에 쓸 돈은 부족한데 공무원들이 다른 선진국보다 낮은 40% 국가채무비율을 고집하는 게 답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40%를 “재정건전성의 마지노선”이라며 박근혜 정부를 비판한 건 4년 전 그 자신이었다. 무릇 역사에는 고정관념을 깨고 흐름을 바꾼 인물이 기록되는 법이다. 그가 물길을 안 텄다면 작년 말 대선을 치르던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국가채무비율 100%가 넘으면 문제가 생기나”라고 당당히 주장할 수 있었겠나.

1차 재난지원금 지급 결정은 과단성 면에서 포퓰리즘사에 오래 남을 장면이다. 100년 만의 팬데믹이 문 대통령의 ‘헌정사상 최초’ 결정을 거들었다. 10조 원 넘는 돈을 선거 전날 국민에게 나눠주기로 결정한 이 시점을 시작으로 선거만 있으면 적자국채를 발행해서라도 추가경정예산을 짜는 게 관행이 돼 가고 있다.

윤 당선인의 ‘50조 원 공약’은 포퓰리즘 경쟁에서 늘 손해 보던 우파가 작심하고 공세로 돌아서 좌우 구분 없는 포퓰리즘의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기초연금’ 공약으로 박근혜 정부 출범에 기여했던 김종인 전 국민의힘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의 손길이 느껴지긴 해도 결국 공약은 윤 당선인 것이다. “앞으로도 포퓰리즘 하겠다”고 장담하는 후보와 경합하면서 이 공약이 없었다면 0.73%포인트 차이 승리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포퓰리즘의 신기원을 열었던 이재명 후보의 공약들이 선거 패배로 미수(未遂)에 그친 반면 윤 당선인 공약은 역사에 남는다. 그의 공약이 선거용 ‘할리우드 액션’이길 기대하며 표를 던진 유권자들은 이 장면이 미완(未完)의 역사로 남길 바라고 있다.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퍼주기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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