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장택동]곤충겟돈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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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쇠고기 수출국 호주에서 소는 외화를 벌어주는 소중한 동물이지만 한때는 골칫거리이기도 했다. 엄청난 양의 소 배설물이 고스란히 땅에 쌓여 굳으면서 매년 서울 면적의 3배가 넘는 초지가 쓸모없는 땅으로 변해갔다. 소는 18세기 말 남아프리카에서 호주로 들어온 외래종이어서 호주에는 소의 배설물을 분해할 수 있는 곤충이 없었기 때문. 과학자들이 연구 끝에 쇠똥구리를 대량으로 풀어놓으면서 이 문제가 해결됐다.

▷사람들은 흔히 지구의 주인은 인간이라고 생각하지만 곤충학자들은 ‘지구는 곤충의 행성’이라고 부른다. 곤충은 지구에 존재한 지가 4억 년이 넘었고 알려진 종류만 100만 종가량에 이른다. 곤충을 ‘벌레’라고 비하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인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식물의 80% 이상이 곤충의 수분(受粉) 활동 덕분에 열매를 맺는다. 쓰레기를 분해하고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것도 곤충의 중요한 역할이다.

▷그런데 곤충의 숫자가 최근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연구팀의 논문에 따르면 고강도 농업으로 서식지가 줄고, 급격한 기후변화가 일어난 지역에서는 최근 20년 새 곤충 개체 수가 49% 감소했다. 곤충 종류 가운데 40%가량은 개체 수가 줄고 있고, 이 중 3분의 1은 멸종위기라는 연구도 있다. 곤충의 감소가 지구에 끔찍한 결과를 불러올 것이라는 뜻에서 곤충과 아마겟돈을 합성한 곤충겟돈(Insectageddon)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한국에선 ‘꿀벌 실종 사건’이 벌어지면서 곤충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고 있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올해 들어 국내에서 약 100억 마리의 꿀벌이 죽거나 사라졌다. 초겨울 고온현상으로 꿀벌들이 겨울잠에서 일찍 깨어나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추워지면서 벌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폐사한 것, 과다한 살충제 사용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꿀벌은 곤충 중에서도 수분에 기여하는 바가 압도적으로 크다. 전국의 양봉농가와 과수농가에 비상이 걸렸고, 식량안보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온다.

▷“곤충 연구자들은 ‘걱정된다’는 표현 대신 ‘공포스럽다’고 말한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해충인 모기도 새와 민물고기에게는 소중한 먹이가 되듯이 생태계에선 모든 곤충이 꼭 필요한 존재다. 노르웨이 곤충학자 안네 스베르드루프튀게손은 책 ‘세상에 나쁜 곤충은 없다’에서 “곤충은 이 세계가 돌아가게 해주는 자연의 작은 톱니바퀴”라고 했다. 그 톱니바퀴가 빠지면 생태계가 흔들리고, 인간의 삶도 위협받게 된다. 곤충 감소가 인류에 보내는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곤충겟돈#곤충#꿀벌 실종 사건#인류에 보내는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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