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아예 없앤 학교도 있다지만, 예전엔 개근상이 퍽 중요했다. 학생이라면 모름지기 받아야 할 상으로 여겨졌다. 졸업식에서 전 학년 개근상을 받으면 ‘성실의 표상’으로 박수를 받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지각도 조퇴도 없이 학교생활에 임했다는 건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그런데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의문이 생겼다. 6년(초등학교) 혹은 3년(중고교) 내내 감기 한번 걸리지 않을 수 있을까? 그게 아니라면 아픈 걸 꾹꾹 참고 학교에 가야 하는 걸까? 나아가 친구들에게 병을 옮길 수 있는데도 학교에 가는 게 옳은 걸까?
코로나19를 전후로 이전엔 개근이 정상이었다면, 이제는 아프면 학교에 안 가는 게 정상이 되어가고 있다. 이는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2020년 상병(傷病)수당 도입을 예고했다. 근로자가 업무와 관련 없는 병이나 부상으로 쉬어도 수당을 지급해 ‘아프면 쉴 권리’를 보장한다는 취지다. 과거 상병수당 논의 과정에선 ‘근면·성실이 중대 가치인 우리나라에서 가능할까’라는 회의론이 컸다. 하지만 제도보다 강력한 게 코로나19였다. 아프면 쉬는 게 정상이라는 걸 경험한 사회적 분위기가 7월 시범사업을 시작하는 상병수당을 빨리 안착시킬 수도 있다.
이처럼 코로나19를 헤쳐오면서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게 된 건 여러 가지다. 코로나19 이전엔 점심시간에 혼자 붐비는 식당에 가면 문전박대를 당하거나, 혼자 밥을 먹고 있으면 주변에서 흘끔흘끔 쳐다봐 불편하다는 사람이 많았다. 반면 요즘은 ‘혼밥’은 물론 ‘혼술’을 할 수 있는 식당도 많아지고, 사람들도 이를 어색하게 여기지 않는다.
내 경우 몇 년 전 여름 목감기가 심해 마스크를 쓰고 외출했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 “미용 시술이라도 했냐”고 물어 마스크를 벗어버린 기억이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더라도 감기 기운이 있거나 독감이 유행하면 마스크부터 챙겨 쓰는 이들이 많을 거다.
방역당국이 18일부터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해제하면서 여기저기서 정상 등교, 정상 근무, 정상 영업을 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대표적으로 교육부도 5월 1일부터 교육활동 정상화를 추진한다고 선언했다. 25개월간의 거리 두기 동안 사회 인프라와 분위기가 크게 달라진 상황에서 ‘일상 회복’이라는 이름 아래 단순히 예전으로 돌아가려는 오류는 없는지 돌아볼 시점이다. 정상적인 등교나 근무란 과연 어떤 것인지에 대해 새로운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학생과 교사, 교수들이 원격수업을 충분히 경험한 만큼 수업 주제나 프로젝트 방식에 따라 대면수업과 원격수업을 일부 혼용하는 게 효과적일 수 있다. 회사들은 “코로나 끝났으니 사무실로 나오라”고 공지하기 전에 업종이나 업무에 따라 재택근무가 더 효율적인 부분은 없었는지 따져보고 새로운 근무 형태를 고민해볼 일이다.
지난 연말 만난 세종시의 한 국장급 공무원은 “예전에는 온라인으로 간단히 논의해도 될 사안들을 굳이 전국팔도에서 KTX를 타고 서울역 인근 회의실에 모여 결정한 경우가 많았다”면서 “코로나19로 비대면 회의를 해보니까 예전 방식이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알게 됐다”고 말했었다. 며칠 전 이 공무원을 다시 만났더니 “또 KTX 타기 시작했다”며 혀를 찼다. 한 발 앞으로 나가긴 정말 어렵지만 두 발 뒷걸음치는 건 순식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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