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영]창신동 모자의 죽음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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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낡은 한옥은 한모 씨(82)가 남편을 여의고 혼자 아들(51)을 키워온 집이다. 병든 모자는 생활고에 시달리다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집이 있다는 이유로 복지 혜택을 받지 못했다. 모자는 지은 지 90년 된 쓰러져 가는 집에서 20일 나란히 숨진 채 발견됐다. 약 한 달 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병을 앓던 아들은 직업이 없었다. 어머니 한 씨가 청소 일을 하다 3년 전 그만뒀다고 한다. 모자는 지난해 기초생활보장 급여를 두 차례 신청했는데 거절당했다. 모자의 소득과 재산은 집을 포함해 1억7000만 원. 기초급여 지급 기준인 소득인정액으로 환산하면 316만 원으로 2인 가구 기준인 97만 원의 3배가 넘었다. 2020년 집을 내놨는데 팔리지 않았다. 2014년 서울 송파구 세 모녀 사건을 계기로 ‘송파 세 모녀법’이 만들어져 지원 기준이 완화됐지만 창신동 모자의 딱한 사정을 헤아려 주지 못했다.

▷정보기술(IT) 강국 한국의 자랑인 ‘복지 사각지대 발굴관리 시스템’도 구멍을 드러냈다. 이 역시 송파 세 모녀 사건을 계기로 구축됐다. 전기료 가스비 수도요금 등 14개 기관 29가지 정보를 종합해 위기 가구를 예측해 내면 사회복지사가 현장 확인 후 지원을 결정한다. 창신동 모자의 집에는 6개월 치 전기요금 26만 원을 내지 못해 ‘전기 공급을 제한한다’는 통지문이 붙어 있었으나 시스템이 걸러내지 못했다.

▷2020년 서울 ‘방배동 모자 사건’에서도 시스템이 허점을 보인 적이 있다. 발달장애인 아들과 살던 어머니가 숨진 지 5개월 만에 발견된 사건인데, 모자는 각종 공과금 수개월 치가 밀렸지만 24만∼28만 원의 기초생활보장 급여를 받고 있어 긴급복지 우선 지원 대상에서 밀려났다. 2019년 서울 관악구에서 아사한 탈북자 모자는 재개발 임대아파트에 거주한다는 이유로 모니터링 망에서 빠졌다. 이 시스템은 임대주택 중 영구임대 국민임대 매입임대만 관리하기 때문이다.

▷시스템이 발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가난하고 돌봐줄 가족이 없으니 도와 달라’며 직접 신청하는 방법밖에 없다. 국내엔 기초생활보장 외에도 기초연금 장애인복지 한부모가족 지원 등 다양한 사회보장급여가 있는데도 지원 대상자 10명 중 4, 5명은 신청하지 않는다. 사회취약계층이어서 이런 제도가 있는 줄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고 신청 절차가 복잡한 탓도 있다. 송파 세 모녀 사건 후 지방자치단체마다 ‘찾아가는 복지’를 다짐했지만 복지망은 여전히 성글다. 그사이 ‘성북구 네 모녀’ ‘대전시 삼부자’들이 빈곤에 시달리다 언제인지도 정확히 모르는 죽음을 맞고 있다.

#서울 창신동#모자의 죽음#사회취약계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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