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 다음 날 회사 화장실에서 잠든 적이 있어. 숙취가 너무 심해서.” 수직적인 문화로 유명한 회사에 다니는 L은 회사 생활을 시작한 20대 말부터 30대 중반이 된 지금까지 이런 일을 종종 겪었다. 문화는 힘이 세니까 L 역시 회식 불참이나 어르신들의 술 거절은 상상도 하지 않았다. 코로나19는 그런 L의 회사까지 바꿔버렸다. L의 회사를 포함한 거의 모든 회사가 변해야 했고, 팬데믹은 영원할 줄 알았던 회식을 잠시나마 없앴다. 직장인들은 처음으로 회식 없는 세상을 경험하게 됐다.
지난주부터 거리 두기가 해제돼 회식이 가능해지긴 했다. 그러나 직장인들은 회식 자리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듯 보인다. 지난달 한국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경제활동을 하는 응답자 33%가 ‘코로나19 종식 후 회식에 덜 참여하고 싶다’고 답했다. 회식이 오후 11시 이후까지 이어진다면 불참 희망 비중은 49%까지 올랐다. 회식도 회사 비용을 쓰는 일이다. 목표와 성공과 실패가 있다. 회식을 반기지 않는 직장인이 많다는 건 회식의 실패율이 그만큼 높다는 의미다.
회식의 목표는 무엇일까. 첫째는 친목 도모다. 사측은 회식을 통해 구성원이 가까워져 업무 효율이 높아지길 기대한다. 30대 후반 P는 다양한 사람과 업무 미팅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회식의 긍정적 의미를 찾았다. 사람 사이엔 “함께 밥을 먹어야 알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에서다.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일이 겹치는 타 부서 사람들과 밥을 먹으며 서로의 입장을 이해했고, 그 후 함께 일하기 편해진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회식 참석자들이 애초에 서로를 싫어한다면 일이 복잡해진다. 원체 인간이 한 공간에 오래 같이 있으면 부정적인 감정이 생기곤 한다. 상하 관계라면 더 그렇다. 이 때문에 보통 직장인의 회식은 싫어하는 사람과 강제로 술을 곁들인 식사를 해야 하는 시간이 된다. 더 싫어져도 할 말 없다. 냉정히 말해 회식은 서로에 대한 마이너스 감정에서 시작하는 자리일 수도 있다. 이 사실을 인정해야 회식을 통한 관계 개선을 노려볼 수 있다.
친교가 아니어도 회식 성공의 희망이 있다. 회식의 테이블 세팅인 음식을 보상이라 여긴다면. 정보기술(IT) 회사에서 일하는 30대 중반 Y는 회식이 나름 즐거웠다. “좋아하는 술과 고기를 먹을 수 있어서”다. 그에게 회식은 열심히 일한 보상이었다. 반대로 나를 포함한 많은 직장인들은 회식 술자리를 보상이라 느끼지 않는다. 술 강권은 없지만 은근한 제안까지 사라질 리 없다. 제안을 거절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술을 버리는 기술만 늘었다. 술과 함께 회식의 성공률도 어딘가로 쏟아버린 셈이다.
“팬데믹 기간 동안 덜 만나도 일이 되는 걸 깨달았는데, 얼마 전 만난 50대 어른은 정반대로 생각하고 계셔서 놀랐어요. 역시 만나야 한다고.” P의 말처럼 사람들은 같은 경험에서도 다른 해석을 한다. 여러 이유로 회식은 다시 돌아올 것이다. 다만 회식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한 변화가 필요하다. 직장인들이 회식 없는 세상을 한번 경험한 만큼, 실패한 회식에 대해서 전보다 더 부정적으로 반응할 테니까.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