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어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검수완박’ 법안을 강행 처리했다. 국민의힘이 법사위 전체회의에 앞서 안건조정위원회 구성을 요구하자 민주당은 탈당한 무소속 민형배 의원을 포함시켜 4 대 2로 통과시켰다. 전체회의에서도 국민의힘을 배제한 채 검수완박 법안을 단독 처리했다. 민주당 요구로 본회의가 열리자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로 맞섰고, 민주당은 이를 무력화하기 위해 ‘회기 쪼개기’ 카드를 꺼내는 등 꼼수에 꼼수를 이어가고 있다.
국회선진화법은 다수당의 입법 독주를 막기 위해 소수당의 역할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여야가 합의해서 2012년 5월 도입했다. 쟁점 법안 처리를 숙의하기 위한 안건조정위를 구성하고, 소수당 의원들 중심으로 필리버스터를 허용한 것이 핵심 내용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야당 대표였던 2015년 9월 언론 인터뷰에서 “선진화법은 대화와 타협을 통한 합의의 정치를 실현하자는 취지”라고 긍정 평가했다.
그러나 민주당이 검수완박 법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선 이런 입법 취지가 완전히 실종됐다. 민 의원을 탈당시켜 안건조정위 가결에 필요한 무소속 의원에 포함시켰다. 관례적으로 안건조정위원장은 최고령 의원이 맡는다는 점을 노려 고령의 김진표 의원을 아무런 연관도 없는 법사위에 사보임시켰다. 입법 강행을 막기 위해 도입된 선진화법의 알맹이는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은 것이다. 이럴 거면 법은 왜 만들었는가.
선진화법이 무용지물이 된 데는 국민의힘 책임도 없지 않다. 국민의힘 전신인 새누리당은 여당 시절 선진화법이 야당의 방패막이가 됐다고 비판했다. 6년 전에는 선진화법을 내세워 법안 처리를 하지 않은 국회의장을 상대로 권한쟁의심판을 헌법재판소에 내기도 했다. 헌재의 각하 결정으로 선진화법은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민주당에 선진화법 꼼수 활용의 빌미를 준 셈이다.
여야 모두 선진화법의 근본 취지엔 공감할 것이다. 그런데도 그때그때 의석수나 정치적 유불리를 따져 선진화법을 악용하는 행태가 반복된다면 정치 선진화는커녕 갈등의 정치만 계속될 것이다. 첨예한 쟁점 법안은 충분한 숙려와 협의를 거치라는 선진화법의 취지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 꼼수에 입법 취지가 훼손되지 않도록 법을 고치거나, 그도 아니면 차라리 폐기하는 게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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