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3년 4개월 넘는 역대 최장 임기 중 가장 힘들었던 순간으로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논란’을 꼽았다. 최근 그는 미국 워싱턴에서 진행한 기자단과의 인터뷰에서 “전 국민 재난지원금이 사실 제일 힘들었다”고 했다. 당시 아내에게 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내가 자리를 벗어나야지. 어떻게 여기서 내 입으로 준다고 하냐.”
홍 부총리가 자리까지 걸 각오로 반대했던 전 국민 재난지원금은 약 1년 전의 일이다. 이낙연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해 2월 2일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공식화하면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보편 지원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홍 부총리는 그날 오후 곧바로 페이스북에 “정부로선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글을 올렸다. 이 일로 홍 부총리는 이 대표에게 “정말 나쁜 사람”이라는 말까지 들었지만 보편 지원을 막았다.
다음 달 출범하는 새 정부는 시작과 함께 올해 두 번째 추경안을 제출하기로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조치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의 손실을 보상해 주겠다는 게 골자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추계에 따르면 소상공인 업체와 소기업 551만 곳이 2020∼2021년 코로나19로 입은 손실은 약 54조 원에 달한다. 2차 추경이 통과되는 대로 이들에게 피해 정도에 따라 지원금이 지급될 예정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인 ‘온전한 손실 보상’을 위한 구체적인 추경 규모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인수위는 “새 정부 출범 후 심사할 예정”이라고만 밝혔다. 추경 규모가 30조 원 안팎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윤 당선인이 대선 기간 50조 원 규모의 손실 보상을 약속했는데, 올해 2월 1차 추경으로 약 17조 원을 이미 지원했기 때문이다. 2차 추경이 30조 원가량으로 정해진다면 역대 최대였던 2020년 3차 추경 규모(35조1000억 원)에 육박한다.
문제는 재원 조달 방식과 물가다. 정부는 국채 발행은 가장 후순위로 검토한다는 방침이지만 규모가 커지면 적자국채 발행은 불가피하다. 2020년 3차 추경 당시 정부는 23조 원이 넘는 적자국채를 발행했다. 나랏빚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는지 보여주는 국회예산정책처 ‘국가채무시계’에 따르면 28일 오후 1인당 국가채무는 1977만 원으로 2000만 원 돌파를 눈앞에 뒀다. 30조 원이 넘는 돈이 시중에 풀리면 이미 4%가 넘은 물가 상승률에 기름을 부을 수도 있다.
홍 부총리는 앞서 언급한 인터뷰에서 “정치권하고 부딪힐 때 정치권이 하라는 대로 하면 정말 재정과 국가가 산에 올라갈지도 모른다”며 “다시 또 부총리를 하라고 해도 나는 욕먹으면서 (재정 건전성을 지키기 위해 반대)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당장 민주당은 인수위의 피해지원금 지급 방침에 대해 “온전한 손실 보상을 사실상 포기했다”며 적극적 재정정책을 주문하고 나섰다. 정무적 판단과 경제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을 이들 모두 홍 부총리의 이 말을 곱씹어 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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