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누구와든 잘 지내려고 애쓰던 때가 있었다. 잘 웃고, 잘 들어주고, 손목시계를 힐끔거리며 싫은 사람과도 지루한 시간을 보냈다.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더 마음을 쏟고, 불편한 대화에도 고갤 끄덕이곤 했다.
내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드러날까 봐 마음 졸이며 사람들 속에 잘 숨겨지길 바랐다. 외롭지 않고 싶어서, 미움받고 싶지 않아서, 미워하고 싶지 않아서, 관계가 두려워서. 어디서든 누구와든 그저 무던히 잘 지내려고 애를 썼다. 한때 나는 그런 식으로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나 10년도 지나지 않아 그 사람들 아무도 곁에 남지 않았다.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얼굴들 사이에 어색하게 웃고 있는 나만 남아버렸다.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던 내가 어째서 ‘좋은 나’로는 느껴지지 않는 걸까. 못내 후회스러웠다.
가랑비 내리던 날에 오랜 친구를 만났다. 우리는 모처럼 만났고 마침 비 내리는 게 좋아서, 커다란 우산 하나를 나눠 쓰고 공원을 걸었다. “좋다. 같이 우산 쓰고 걷는 일이 이렇게나 좋았구나. 나 이제는 맘 편하게 만나는 사람이 얼마 없어.” 서로의 어깨에 비를 맞으면서도 마음이 편해서 한참을 걸었다. 좋은 관계란 뭘까, 좋은 사람이란 뭘까. 가만가만 고민을 털어놓자 친구도 속엣말을 꺼냈다.
“나도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 재밌는 친구, 멋진 사수, 살가운 딸, 다정한 엄마. 그런데 나는 한 사람이야. 우리는 너무 많은 사람을 만나잖아. 모두에게 마음을 쏟는 건 불가능해. 소문은 터무니없지만 힘이 세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기준으로 나를 평가하지. 나는 누군가에겐 서운한 사람, 무서운 사람, 심지어는 나쁜 사람일 수도 있는 거야. 좋은 사람이란 뭘까. 여전히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좋아할 수 있는 ‘나다운 나’가 되고 싶어. 나는 나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어.”
나에게도 넌 좋은 사람인걸, 친구에게 말해주려다 깨달았다. 나는 이미 좋은 사람을 찾았구나. 우산 하나에 어깨를 기대고 마음까지 나누는 사람이 여기 있었다. 우리는 왜 되려고만 애썼을까 이미 곁에 있었는데. 이다지도 자연스럽게.
삶에 필요한 사람은 하나여도 괜찮다. 같이 우산 나눠 쓸 사람 하나. 문득 전화 걸고픈 사람 하나. 긴 편지 보내고픈 사람 하나. 따뜻한 식사 나눌 사람 하나. 닮고 싶은 사람 하나. 나다운 나 하나. 그런 사람들 하나씩 하나씩 찾아내는 게 내 삶을 꾸리는 일이더라고. 한 사람과 마주 웃으며 대화하는 이제는 안다. 내가 살고 싶은 방식은 ‘좋은 사람 되기’가 아니라 ‘좋은 사람 찾기’였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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