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의 시골에는 좁은 숲길과 넓은 평야가 번갈아 이어지는 지형이 많다.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은 광활한 평야를 사이에 두고 양 끝의 숲에 몸을 숨긴 채 총격전을 벌인다.
며칠 전 우크라이나군이 주둔해 있는 숲에 30, 40대 여성들이 찾아왔다. 서부 도시인 르비우 인근에 사는 이들은 남편들이 속한 부대를 수소문해 동부전선인 이곳까지 차를 몰고 왔다.
“우리 남편들, 지금 어디에 있나요?”
부대장은 참담한 표정으로 수백 m 앞 평야를 가리켰다.
“저기에 있습니다. 3일째.”
평야 너머의 숲에서 러시아군이 총을 겨누고 있어 시신 수습을 못 하고 있던 참이었다. 여성들은 부대장의 만류에도 적막한 평야로 걸어 나갔다. 언제든 맞은편 숲에서 총탄이 날아들 수 있는 상황이었다. 여성들은 평야에 널린 시신들의 얼굴을 하나씩 확인했다. 그러곤 각자의 남편을 등에 지고 넘어졌다 일어서길 반복하며 아군 쪽 숲으로 되돌아왔다.
남편들은 서로에게 이웃이자 전우였다. 러시아의 침공 직후 함께 군에 자원해 같은 부대로 배치됐다. 마을에 남겨진 부인들은 최근 갑자기 연락이 끊긴 남편들을 찾아보자며 맨몸으로 전장에 온 것이었다. 이들은 남편의 주검을 싣고 고향으로 돌아와 합동 장례를 치렀다. 요즘 우크라이나 각지에서 이런 비극이 벌어진다.
70일째를 맞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푸틴은 우크라이나가 영토의 상당 부분을 포기하며 완전히 굴복하기 전까진 전쟁을 끝낼 생각이 없어 보인다. 저항 의지를 꺾기 위해 갈수록 잔인하게 우크라이나인들을 살해하며 핵 공격 등 위협 수위를 높이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지원해 온 미국은 군사 원조 등에 42조 원(약 330억 달러)을 추가 투입하기로 했다. 전쟁이 아무리 길어져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크라이나가 이 정당한 항전에서 승리하길 바라고 있다. 동시에 하루빨리 전쟁이 끝나 죽음의 행렬이 멈추기를 바란다. 안타까운 것은 이 두 바람이 현재로선 양립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푸틴의 제국주의적 야심을 충족시켜 주지 않는 이상 전쟁을 빨리 끝내기 어렵고, 그렇다고 끝까지 결사 항전할 경우 희생은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부정한 평화가 옳은 전쟁보다 낫다’는 독일 격언이 있다. 어떤 명분에도 피하는 게 상책일 만큼 전쟁은 너무도 처참하다는 의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며칠 전 우크라이나 추가 지원을 발표하며 그와는 대척점에 있는 말을 했다. “싸움의 비용이 싸지는 않지만, 공격에 굴복하는 대가는 더 비쌀 것이다.”
우크라이나인들은 부정한 평화 대신 굴복하지 않는 길을 택했다. 지난달 전장에서 남편과 아들을 잃은 한 여성은 “소련 밑에서 살아봐서 그게 어떤 건지 알고 있다. 모든 것을 잃었지만 러시아에 점령당한 땅에서 사느니 죽는 게 낫다”고 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 등 일부 점령지에서 벌써부터 레닌 동상을 다시 세우고 문화재를 약탈하는 등 민족성을 말살하고 있다. 화폐도 루블화로 바꾸고 휴교 상태인 학교를 열어 사상 교육을 준비하고 있다. 그 지역 청년들은 러시아 군복을 입고 동족이나 다른 약소국 시민들에게 총을 겨누게 될까 봐 치를 떤다. 20여 년 전 러시아의 대량 학살 피해자였던 체첸인들은 이번 전쟁에서 우크라이나인을 학살하는 데 동원되고 있다. 나라를 빼앗긴 대가란 그런 것이다.
지난달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화상연설을 했을 때 참석한 의원은 불과 50명 남짓이었다. 예정된 오후 5시에 맞춰 화상에 등장한 젤렌스키 대통령은 의원들이 서로 악수를 건네고 잡담하는 것을 한참 지켜보다 연설을 시작했다. 그날의 휑한 국회 강당 사진은 “우크라이나의 주장에 다른 국가들은 아무 관심이 없다”는 러시아 언론의 선전에 요긴하게 쓰였다.
미국 영국 일본 등 다른 나라 의원들처럼 전원 참석해 기립박수를 쳤어야 했다고 따지려는 것은 아니다. 나라마다 사정은 다를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사정을 고려하면 제국주의 역사를 가진 강대국들보다 더욱 세련된 방식으로 항전 중인 국가의 원수에게 존중과 공감을 표했어야 했다.
지금 우크라이나인들은 어떻게든 저항하지 않을 수 없고, 저항하자니 너무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우리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며 뼈저리게 실감했던 딜레마가 바로 그런 것이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국회 연설은 ‘굴복하지 않는 길’을 먼저 걸었던 우리가 품격 있는 외교를 선보일 기회였지만 국제적 망신을 자초한 흑역사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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