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철희]‘3不’ 흔들기, 새로운 韓中관계 지렛대 될까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5월 5일 03시 00분


尹정부 ‘脫중국’은 오만한 中의 자업자득
배짱에 능력도 갖춰 ‘상호존중’ 정립해야

이철희 논설위원
이철희 논설위원
“저는 격노 잘 안 하고요.”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주 퇴임 대담에서 이렇게 말했지만, 재임 기간에 종종 대변인 브리핑이나 참모진 전언을 통해 자신의 노여운 심기를 드러내곤 했다. 문 대통령이 처음으로 그 노여움을 드러낸 것은 취임한 지 20일 만이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발사대 4기가 비공개로 국내에 추가 반입된 사실을 보고받고 “매우 충격적”이라며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국방부가 국민도 모르게 일을 진행했고 의도적으로 보고까지 누락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청와대 안팎에선 하극상이니 국기문란이니 격한 반응도 나왔다. 결국 실무자 문책 선에서 마무리됐지만, 그것은 이제 새 정권이 들어섰으니 대외정책도 확실히 바뀔 것임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전임 박근혜 정부의 사드 배치를 최대의 외교적 실패로 봤다. 중국 정부의 경제 보복과 한한령(限韓令·한류 수입 금지), 외교관계의 사실상 단절까지 낳은 패착을 바로잡는 것이야말로 새 정부의 차별성을 보여줄 기회로 여겼다. 그래서 곧바로 중국과의 사드 사태 해결에 매달렸다.

그로부터 5개월 뒤 나온 것이 이른바 ‘3불(不) 입장’이었다. 사드 철거를 요구하는 중국과의 협의는 순조롭지 않았다. 그래서 정부는 ‘중국 측은 자신들의 우려를 천명했고 한국 측은 그간 밝혀온 입장을 다시 설명했다’는 협의 내용을 발표하고, 외교부 장관이 국회에서 사드 추가 배치와 미사일방어체계(MD) 참여, 한미일 군사동맹을 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그러면서 “중국과 합의하거나 약속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런 외교적 타협 방식은 사실 30년 전 한중 수교 때도 있었다. 수교 협상의 난제는 과거사 문제였다. 한국은 중국군의 6·25전쟁 개입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지만 중국은 거부했다. 결국 중국 측이 ‘6·25 참전은 중국 국경지대가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일이었고 이는 과거에 있었던 불행하고 유감스러운 일이었다’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우리 정부가 공개하는 것으로 협상은 타결됐다. 중국은 “사과한 게 아니다”라고 했지만.

어쨌든 문재인 정부는 ‘굴종외교’ 논란까지 감수하면서 한중관계 복원에 나섰는데도 결과는 갈등의 봉합에 그쳤다. 이후 중국은 마치 시혜라도 베풀 듯 한한령을 찔끔찔끔 풀면서 한국을 관리했고, 한국은 시진핑 주석의 방한을 통한 관계 정상화를 기다렸다. 그렇게 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내 중국에 끌려 다녔다.

윤석열 새 정부의 대(對)중국 기조는 크게 다를 것이다. 윤 당선인은 대선 때 사드 추가 배치를 공약했고, MD 참여나 한미일 군사동맹 가능성도 열어뒀다. ‘전략적 동반자’라는 공식적 관계가 격하(格下)되지는 않겠지만 실질적 관계의 이격(離隔)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물론 대선 이후 당선인 측의 언급은 신중해졌다. 중국에 당당히 맞설 배짱도 필요하지만 우선 우리 능력부터 갖춰야 한다는 현실론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를 내건 ‘글로벌 중추국가’라는 새 정부의 지향점 앞에 중국의 자리는 보이지 않는다. 보름 뒤 방한하는 미국 대통령에게는 첫 아시아 순방지로서 ‘중국 견제’ 연설을 위한 멍석도 깔아준 상황이다. 그러니 한국의 정권교체를 바라보는 중국의 속내도 편치는 않을 것이다. 그 모든 게 러시아와 북한의 불법무도는 방관하면서 주변국에는 치졸한 보복과 겁박, 오만방자한 외교로 일관하던 중국의 자업자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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