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군은 4일 발트해 인근 칼리닌그라드에서 전술핵탄두를 탑재한 이스칸데르 단거리탄도미사일 공격 시뮬레이션 훈련을 처음 실시했다. 우리 군과 정보 당국도 비상이 걸렸다. 핵전쟁 발발 가능성 때문이다. 최근 만난 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실제 핵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미국 등 서방과 우크라이나 당국도 러시아의 핵 사용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핵은 한동안 ‘사용할 수 없는 무기’로 간주됐다. 도시 또는 국가를 소멸시킬 수 있는 전략핵무기 사용은 상대 국가 또는 상대 진영의 보복 핵공격을 불러온다. ‘공포의 균형’이 이뤄졌다. 이 같은 국제질서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부소장은 최근 발표한 ‘우크라이나 사태로 본 핵전쟁의 문턱’ 보고서에서 “핵전쟁 가능성은 요원한 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었으나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 이후 76년간 유지돼 온 핵 금기마저 깨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고 썼다.
‘전술핵’이 핵심이다. 전술핵은 공멸을 감수해야 하는 전략핵보다 파괴력이 낮지만 핵무기 사용 조건을 완화시켰다. 핵을 사용 가능한 무기로 만든 셈이다. 작다고 가볍게 치부할 수 없다. 히로시마 원폭의 폭발력 절반에 해당하는 전술핵미사일이 대도시에서 터지면 수십만 명이 죽는다. 사용 가능성을 상대적으로 높였다는 점에서 더 위협적이다.
그러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비롯해 국제사회는 이렇다 할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실제 핵미사일을 쏜다고 가정했을 때, 뚜렷한 대비책도 없다.
이때다 싶었는지 북한 김정은은 푸틴을 따라 하듯 연일 레드라인을 넘나들며 핵 위협 수위를 높이고 있다. 핵심은 역시 전술핵이다. 지난달 25일 역대 최대 규모로 치러진 북한 열병식에서 김정은은 “국가 근본 이익 침탈 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며 핵 사용 조건을 확장했다. 괴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에 눈길이 쏠렸지만, 이날 열병식 무대에 등장한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KN-23은 남한을 겨냥한 전술핵미사일이다. 김정은은 선제적 핵 사용 가능성까지 내비치고 있다.
지난해 1월 8차 당 대회에서 김정은은 “현대전에서 작전임무 목적과 타격 대상에 따라 각이한 수단으로 적용” 계획을 밝혔다. 이후 북한은 전술핵을 장착할 수 있는 단거리탄도미사일, 방사포 등 다양한 투발 수단을 시험 발사했다. 모두 남한을 겨냥한 무기 체계다. 북한은 또 이달 중순 7차 핵실험을 통해 ‘핵 소형화’를 거친 전술핵탄두의 무기화를 최종 검증할 것으로 한미 정보당국은 예상하고 있다. 전술핵의 전력화가 눈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전술핵은 침공 억제를 위한 보복 위협용이 아니다. 실전에서의 사용을 전제로 한다. 선제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실제 운용이 가능한 전술핵무기를 배치 완료한 북한이 다시 ‘서울 불바다’ 발언을 꺼냈을 때 우리는 적절한 대응 방안이 있을까.
북한의 오랜 공갈 협박에 우리 사회엔 “설마 쏘겠어”라는 내성이 쌓인 듯하다. 하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전 세계적 핵 비확산 체제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북한의 핵 위협이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실체적인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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