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새샘]‘노을 맛집’ 찾는 ‘영끌족’의 주거 상향 욕구 충족시켜야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5월 7일 03시 00분


이새샘 산업2부 차장
이새샘 산업2부 차장
‘노을 맛집’이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노을이 잘 보이는 장소를 말한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서 ‘온라인 집들이’를 하는 20, 30대들이 많이 쓴다. 집에서 노을이 멋지게 지는 창밖 하늘을 배경으로 와인이나 커피 한잔하는 모습을 올리며 ‘#노을맛집’ 해시태그를 단다.

노을이 잘 보인다는 말은 집이 서쪽으로 향해 있단 얘기다. 여름이면 해가 늦게까지 들어 찜통이 된다는 바로 그 ‘서향집’이다. 예전 같으면 살기 불편하다며 기피할 집인데 요새는 낭만 있는 집이 됐다. 이 ‘노을 맛집’의 매력이 꽤 대단한지 요즘은 아파트 건설사들도 거실은 남향으로 하더라도 주방이나 식사 공간에 큰 창을 내고 노을을 볼 수 있도록 서향으로 설계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노을 맛집이란 단어에는 내가 사는 공간이 곧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요즘 세대들의 생각이 드러난다. 예전에는 결혼을 하며 전세를 얻거나 집을 사야 인테리어를 고민하기 시작했다면, 이젠 월세 내며 사는 자취방도 내 취향을 반영한 공간으로 꾸미고 싶어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형성된 ‘집콕 문화’는 이런 흐름을 가속화했다. 집은 ‘사는(buy) 것’이 아니라 ‘사는(live) 곳’이라던 문재인 정부 부동산정책 철학을 젊은 세대들은 어찌 보면 이미 삶 속에서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노을 맛집’의 이면에는 더 좋은 공간, 더 좋은 집에서 살고 싶다는 욕구도 깔려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3월 한 달 서울 아파트 매매거래 중 30대 이하가 매입한 비중은 전체의 40.7%였다. 올해 2월 36%까지 낮아졌던 비중이 다시 높아졌다. ‘지금이 집값 고점이고, 금리가 오르니 무리해서 대출 받으면 안 된다’는 전문가들의 경고에도 아랑곳없이 젊은 세대들은 다시 집을 사러 나섰다는 얘기다.

이들이 집 사기에 달려드는 이유는 단순하다. 지금 아니면 못 살 것 같다는 절박함이다. 기왕이면 직장과 가깝고 살기 좋은 곳에, 가격이 조금이나마 올라 더 좋은 집으로 옮길 수 있는 지역에 집을 사고 싶어 한다. 노을 맛집 해시태그를 달며 사진을 올리는 2030세대와 ‘영끌’로 집을 사는 2030세대는 사실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윤석열 정부의 부동산정책 철학에 대해 “주거 안정은 주거 상향 욕구와 주거 복지를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밝혔다. 바꿔 말하면 ‘노을 맛집’에 월세로 살다 불편하면 남향 전셋집으로 옮기고, 나중엔 내 집 마련까지 꿈꿀 수 있어야 주거가 안정됐다고 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기 위해선 수요에 맞는 신규 주택 공급이 이뤄지는 한편 시장에 매물이 늘어나 거래가 수월해지는 것이 급선무다. 하지만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도,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에도 ‘공급을 늘리겠다’는 구호만 있을 뿐 구체적인 방법은 흐릿했다. 1기 신도시를 놓고 벌어진 소모적인 논쟁은 정책 초점이 지방선거에만 맞춰져 있는 것 아닌지 의심하게 한다. 당장 다음 주 새 정부가 출범한다. 과연 철학이 반영된 실행계획이 나올지, 국민들은 예의주시하고 있다.
#노을 맛집#영끌족#인스타그램#온라인 집들이#서향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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