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개 보조개로 웃던 배우 강수연. 향년 56세로 7일 별세한 강수연은 아역 배우 출신이다. 모든 아역 배우들이 그러하듯 그에게도 연기 변신을 시도할 때가 왔고, 스무 살이던 1986년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에서 19금 연기에 도전한다. 이듬해 개봉하자 국내에선 ‘수위’에 관한 논란만 시끄러웠는데 뜻밖에 해외에서 뜨거운 반응이 전해졌다. 한국 최초의 ‘월드 스타’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강수연은 1987년 아시아 여배우로는 처음으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씨받이’의 옥녀 연기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주요 영화제 수상은 한국영화 68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당시 신예 여배우 투톱은 동갑내기 동명여고 출신인 조용원과 강수연. 임 감독은 옥녀 역할에 영화 ‘땡볕’으로 앞서 스타덤에 오른 조용원을 먼저 떠올렸지만 ‘암팡진 조선 미인’ 강수연을 선택했다. 그는 임 감독의 ‘아제 아제 바라아제’로 1989년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월드 스타 지위를 굳혔다.
▷강수연이 해외에서 연거푸 수상하던 시기는 경제 문화적으로 약진하던 동아시아 국가의 영화계가 작가주의 감독과 스타성 있는 여배우를 앞세워 세계 시장 공략에 나서던 때다. 중국 5세대 감독 장이머우에게 궁리, 홍콩 뉴웨이브 감독 왕자웨이에게 장만위가 있듯 임 감독의 페르소나는 강수연이었다. 강수연이 연기한 임 감독 특유의 한 서린 에로티시즘에서 서구 영화계는 이국적 미학을 발견했고, 둘은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문화적 자산이 됐다.
▷민주화 이후 새로운 영화 실험에 나서는 코리안뉴웨이브 감독들이 등장하는데 강수연은 이들 작품에서 전통적인 수동적 여성상을 벗고 현대 여성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준다. 장선우 감독의 ‘경마장 가는 길’, 박광수의 ‘베를린 리포트’, 이명세의 ‘지독한 사랑’, 임상수의 ‘처녀들의 저녁식사’가 이 시기 대표작들이다. 국내에선 호평받았지만 해외 평단은 냉담했다. 2000년대 이후 강수연은 ‘배우’보다는 ‘영화인’으로 바쁜 삶을 살게 된다.
▷영화계에선 그가 스물하나 너무 어린 나이에 월드 스타가 된 것이 배우로서는 독이 됐다고 아쉬워한다. 강수연에 이어 두 번째 해외 3대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자(2007년 칸영화제 ‘밀양’의 전도연)가 나오기까지 20년이 걸렸으니 고인이 얼마나 앞서간 배우였는지 알 수 있다. 임 감독은 “요즘 같은 배우 관리 시스템만 있었다면 더 큰 배우가 됐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돈 때문에 ‘가오’를 버리는 법 없었던 영화배우 강수연의 눈부시게 아름답던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너무 앞서간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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