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3일 앨라배마주 록히드마틴 공장을 찾아 이같이 말했다. 단상에 서 연설을 시작하며 “여러분, 자리가 있다면 모두 앉아 주세요”라고 말하자 이미 자리에 앉아 있던 참석자들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기 때문이다. 미 의회에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 승인을 촉구하는 중요한 자리에서 연설을 시작하자마자 실언을 한 셈이지만 그는 ‘쿨(cool)’하게 실수를 인정하며 노회한 정치인다운 기지를 발휘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기자회견이나 연설에서 말실수로 구설에 오른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바이든 대통령 스스로 공개석상에서 “나는 실언제조기(gaffe machine)”라고 했을 정도다. 그가 실언을 할 때마다 미 언론들은 비판을 아끼지 않는다. 미 주간지 ‘타임’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당시 바이든 부통령의 실수들을 모은 ‘10대 실언’을 선정해 보도하면서 그에게 ‘실언병’이 있다고 비꼬았다. 우크라이나 사태 초기에도 반복된 바이든 대통령의 실언에 미국 언론들은 “공개 연설을 자제해야 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말실수뿐만이 아니다. 불같은 성정의 바이든 대통령은 회의 도중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큰 소리로 욕설을 퍼붓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거친 언어 습관은 기자들을 만나서도 쉽게 감추기 어려웠는지 지난해 6월 미-러 정상회담 직후엔 생중계 기자회견에서 ‘빌어먹을’이라고 욕설을 내뱉기도 했다.
잦은 말실수와 쉽게 흥분하는 성정은 언론과 소통하는 데 적합한 자질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바이든 대통령이 임기 첫해 가진 공식 기자회견은 9차례로 역대 미국 대통령 중 로널드 레이건·제럴드 포드(각 6차례), 리처드 닉슨(8차례) 등에 이어 네 번째로 적었다.
하지만 그런 바이든 대통령조차 한국 대통령과는 언론과의 소통 빈도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임기 첫해 바이든 대통령이 공개 일정 전후 기자들과 가진 즉석 문답은 216회. 공개 일정이 없는 주말 등을 제외하면 거의 매일 언론에 주요 현안에 대한 대화에 나선 셈이다.
문재인 정부도 한때 이런 ‘미국식 소통’을 검토하기도 했다. 대통령의 청와대 외부 출입 시 기자들과 즉석 문답을 주고받는 방식이다. 하지만 당시 청와대는 오랜 검토 끝에 “어렵다”는 답을 내놨다. “대통령 발언에 무게가 너무 크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퇴임을 앞두고 부쩍 민감한 현안에 대해 거침없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문 대통령은 최근 “언론은 취사선택해서 취재하고 보도할 뿐”이라며 “때로는 편향적이기도 하다”고 국내 언론을 비판했다. 중요한 사안은 직접 브리핑하겠다던 문 대통령의 취임 전 약속이 왜 공수표가 됐는지 짐작할 수 있는 발언이다.
바이든 대통령도 종종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에 불만을 드러낸다. 그래도 그는 “언론은 좋은 면과 나쁜 면, 진실을 보여주는 거울을 들고 있다고 믿는다”며 소통을 멈추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10일 취임하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 후 보인 소통 행보를 두고 평가가 엇갈린다. 달라진 모습을 보이겠다고 추진한 깜짝 차담회 등을 두고 일부 언론은 “농담 따먹기가 소통이냐”는 혹평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비판받을수록 더 과감한 소통에 나서길 기대해본다. 소통이야말로 윤 당선인의 당선 일성인 ‘제왕적 대통령제’ 개혁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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