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은 행복의 문제와 직결된다. 사람의 행복은 ‘건강’ 다음으로 ‘일자리’에 좌우된다. 일하고 싶은데 못 하면 소득이 감소하고 고립된다. 취업은 사람을 행복하게, 퇴직은 자신이 원하던 바가 아니라면 사람을 우울하게 만든다. 게다가 일을 할 체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이가 많다고 일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면 자원이 낭비되고 성장도 둔화된다. 또 고령화는 빈곤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고령화로 복지 지출은 늘고 복지 재원이 준다. 수명이 길어진 만큼 정년을 연장하자는 데 이견이 없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 노동계는 정년 연장을 요구하지만 일반 사람들은 호응이 적다. 전문가들은 정년을 연장해도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건 아니라고 한다. 왜 그럴까?》
○ 독일 일본, 정년 연장하며 노동 환경 개혁
어떤 나라든 정년 문제는 중요한 국가적 과제다. 기업과 근로자는 물론 노동 시장에 진입하는 청년 세대와 기성세대의 이해관계가 엇갈릴 수 있다. 정년 연장은 기업의 고용을 줄일 수 있다. 기득권을 연장시켜 청년 세대에게는 불이익을 줄 수 있다.
주요 국가의 정년 정책은 차이가 있다. 독일과 일본은 정년을 연장한 반면, 미국과 영국은 정년 제도 자체를 폐지했다. 정년을 연장한 나라는 임금과 고용 결정 관행을 유연화해 부작용을 줄이고자 했다. 독일은 노동법을, 일본은 임금 체계를 개혁했다. 미국은 연령 차별 문제를 피하기 위해 정년 제도를 폐지했다. 그 대신 사회보장법에 따른 은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연령을 연장했다.
한국은 어떤가. 2016년 정년을 57세에서 60세로 연장했고, 앞으로 65세로 늘리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정년 연장의 부작용을 막기 위한 노력은 거의 없었다. 근속 연수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는 호봉제는 그대로다. 게으름을 피워도 본인이 반대하면 고용이 유지된다. 노동 시장이 이처럼 경직되다 보니 ‘정년 연장의 역설’이 커졌다. 60세 정년 연장으로 청년층이 일할 기회는 줄었고, 고령층은 취업자가 늘었지만 직장을 조기에 그만두는 사람이 늘어 고용의 질이 저하되었다. 60세 정년 연장에 대한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분석에 의하면 고령층(55∼60세)은 고용이 0.6명 늘었지만 청년층(15∼29세)은 0.2명 감소했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조기 퇴직자가 급증해 평균 퇴직 연령이 50.0세에서 49.3세로 떨어졌다.
○ 호봉제 폐지, 정년 연장과 함께 추진해야
정년을 65세로 연장한다고 달라질 것 같지 않다. 공무원 등 공공부문 종사자와 대기업의 노동조합 조합원들은 정년 연장의 혜택을 보고 나머지 사람에게는 ‘그림의 떡’처럼 될 가능성이 크다. 통계청의 2019년 고령자 통계를 보면 55∼64세 취업 경험자 중 정년 퇴직자의 비율은 2016년 8.2%에서 2019년 7.1%로 감소했다.
한국 노동 시장에서는 현실적으로 은퇴가 65세를 훌쩍 넘는다. 고령층이 될수록 일자리는 불안하다. 정년 제도가 무색하게 50세쯤 직장에서 퇴직하고, 70세 넘어 노동 시장에서 은퇴하는 사람이 많다. 사실상 정년과 은퇴는 관계가 없다. 반면 다른 나라는 정년과 은퇴의 시기가 크게 다르지 않다.
게다가 한국은 고령층의 고용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데도 불구하고 빈곤율은 가장 높은 모순을 안고 있다. 고령층의 고용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2배에 가깝지만 상대 빈곤율은 3.5배 높다.
임금과 고용 결정의 관행을 바꾸지 않는 한 정년 연장은 일자리 불안을 가중시킨다. 다른 나라는 장기적인 고용 관계를 유지하는 비율이 고령층일수록 증가하지만 한국은 정반대다. 60세 이상 고령층이 1년 이하 근속하는 사람의 비율은 한국이 33.9%로 OECD 평균(9.1%)의 4배에 가깝다. 반면 5년 이상 같은 직장에 다니고 있는 사람의 비율은 한국이 23.4%다. OECD 평균치는 50.3%로 두 배 이상이다.
임시직으로 일하는 비중도 55∼64세 기준으로 한국은 32.7%로 OECD 평균(7.9%)의 4배 이상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임금 결정 관행의 모순에 있다. 급여가 직무가 아니라 호봉, 즉 근속 연수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자동으로 올라간다.
호봉제로 임금을 결정하는 나라는 찾기 어렵다. 호봉제는 소득의 안정에 도움이 되지만 지속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나라는 직무와 성과에 따라 임금을 결정한다. 이렇다 보니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은 근속 연수 ‘30년 이상’과 ‘1년 미만’ 근로자의 임금 격차가 4.39배다. 반면 유럽연합(EU) 24개국 평균은 1.62배로 한국의 3분의 1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호봉제는 생산성 제고에도 장애가 된다. 한국노동연구원의 분석에 의하면 ‘55세 이상’ 고령층의 임금은 ‘34세 이하’의 3배이지만 이 고령층의 생산성은 34세 이하의 60% 수준이다. 호봉제는 특권으로 작용한다. 공무원 등 공공부문은 호봉제를 유지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민간 기업은 대기업일수록 호봉제를 따르는 비율이 높다. 1000명 이상 사업체는 69%다.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데 장애가 되는 호봉제의 폐지는 정년 연장과 함께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호봉제의 폐지는 공공부문이 솔선수범해야 가능하다.
○ 평생교육 훈련 시스템 강화도 필요
고령화에 따른 생산가능인구의 부족과 연금 고갈 등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생산성 제고가 핵심이다. 한국은행의 분석에 따르면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년 연장,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 제고보다 생산성의 제고가 더 효과적이다. 고령층의 은퇴가 5년 늦어지면 경제성장률이 0.2∼0.4%포인트 상승하고, 다른 나라보다 낮은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OECD 평균 수준으로 올라가면 0.3∼0.4%포인트 상승한다. 하지만 노동생산성 증가율을 2016년 현재 수준인 2.1%만 유지해도 경제성장률이 0.4∼0.8%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령화 문제를 해결한 선진국에는 공통점이 있다. 정년 연장이든 정년 폐지든 그 자체로서 고령층의 생산성을 높이도록 제도를 설계하고, 연금과 세제로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숙련 개발을 위한 평생교육 훈련 시스템을 강화했다.
65세 정년 연장은 적극적인 고령화 정책 차원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고령층을 복지 수급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소극적 고령화 정책을 유지하는 한 고령화가 빈곤화로 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적극적 고령화 정책으로 전환하려면 고령층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수적이다. 선진국의 경험에 의하면 고령층이라고 생산성이 낮은 것은 아니다. 경험을 통해 얻은 숙련이 필요한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이나, 기술 변화를 이해하고 적응력을 키운 사람은 젊을 때의 생산성이 유지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