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땅이면서도 우리가 갈 수 없는 곳이 있다. 이름 하여 ‘자유의 마을’이다. 내비게이션에서조차 잡히지 않는다. 그저 ‘찾을 수 없는 지역’이라고 표시된다. 자유의 마을은 전쟁이 만든 아주 독특한 곳이다. 6·25전쟁의 일단락 단계에서 정전협정은 판문점 부근의 대성동 마을을 특별 관리하게 했다. 그래서 1953년 이래 대성동은 ‘자유의 마을’로 불리면서 한국 정부 대신 유엔사령부의 관리 아래에 있다. 현재 자유의 마을 주민은 200여 명이다.
이들은 납세의 의무나 병역 의무도 없다. 다만 32세가 되면 중대 결정을 해야 한다. 자유의 마을 주민으로 평생 살 것인가, 아니면 남한 땅으로 떠날 것인가. 남성들은 외지에서 신부를 데리고 올 수 있지만 여성들은 신랑을 데리고 와 살 수 없다. 아주 독특한 마을, 이름 하여 ‘자유의 마을’이다. 오늘도 우리들 곁에 있는 대한민국의 땅이다. 하지만 이상도 하다. 남도 아니고 북도 아니고, 제3의 지대이기 때문이다.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출입금지구역, 분단의 상징이기도 한 자유의 마을. 무엇인가 잔잔한 울림을 주는 지역이다.
문경원&전준호는 2012년 이래 ‘미지에서 온 소식’ 연작을 발표해 오고 있다. 독일의 카셀 도쿠멘타 이후 미국 시카고, 스위스 취리히, 영국 리버풀 등으로 연결하면서 작품 내용을 확장하고 있다. 그것의 절정은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개최한 ‘MMCA 현대차 시리즈 2021’이었다. 여기서 이들은 ‘미지에서 온 소식, 자유의 마을’을 펼치면서, 비무장지대(DMZ)의 ‘자유의 마을’을 새롭게 의미 부여했다. 여기의 ‘미지에서 온 소식’은 윌리엄 모리스의 소설에서 따온 것이다. 소설은 미래에 올 유토피아를 여행하면서 현실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들 작가는 무엇 때문에 ‘미지에서 온 소식’에 천착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암시하는 것 같다.
문경원&전준호의 ‘자유의 마을’은 현실과 상상력의 중첩에 의한 영상작업이다. 외부 세계와 차단된 삶을 살고 있는 32세 남성 A와 역시 고립된 삶을 살고 있는 남성 B가 등장하는 내용이다. A가 채집한 식물도감을 비닐 풍선으로 받은 B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물론 이 영화는 ‘자유의 마을’ 현장에서 촬영한 것은 아니다. 출입금지구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유의 마을’의 현실을 담은 것도 아니다. 사실과 허구의 구별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작가들은 자유의 마을의 이야기를 차용해 이데올로기 문제 너머의 팬데믹 시대와 그 이후의 현실을 상징하고자 했다. 한마디로 ‘예술은 인간 의식의 변화를 위한 기획’이라는 작가의 신념에 의한 결과물이었다. 나라와 도시를 떠돌면서 경험을 공유하고, 연대를 통해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를 전망하고자 했다.
문경원&전준호의 ‘미지에서 온 소식’은 서울에 이어 3일 일본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에서 개막했다. 개막식 현장은 한마디로 뜨거웠다. 무엇보다 30여 명의 기자가 모인 사전공개 모임에서 기자들은 열띤 취재 경쟁을 보였다. 이어 개막식은 가나자와 시장을 비롯해 주요 미술관 관장 등 초청 귀빈 130명가량이 모여 전시를 축하했다. 나는 인사말에서 덕담을 했다. “오늘은 나의 생일이다. 나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이렇듯 많은 분들이 참석해 주어 고맙다(웃음). 그렇다고 놀랄 일도 아니다. 365일 매일이 나의 생일이기 때문이다. 그 많고도 많은 나의 생일 가운데 오늘의 생일은 더욱 각별하다. 문경원&전준호의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 전시 개막일이기 때문이다.” 정말 그랬다.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에서의 문경원&전준호 전시는 축복의 생일과 다름없었다. 팬데믹 시절의 쾌거였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이번 전시 참여를 위해 다섯 번이나 코로나19 검사를 받아야 했고, 일본 현지에서는 3일간 격리조치를 당하기도 했다. 이런 어려움을 딛고 미술관 개막식에 참석했으니 남다른 감회가 어찌 없겠는가.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 전시는 서울관 전시를 기본으로 해 꾸며졌다. 다만 이번 전시를 위해 신작 ‘미지에서 온 소식: 일식(Eclipse)’을 발표했다. 이는 바다에서 표류하는 젊은 남자를 통해 자유를 향한 인간의 근원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더불어 가나자와 해변 마을의 이야기를 담은 신작도 발표했다. 서울관에서 선보였던 ‘자유의 마을’은 대형 LED 설치를 위해 서울에서부터 기자재를 공수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었다.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 전시는 여러 전시실을 영상 작품으로 꾸미면서 작가 특유의 다양하면서도 진지한 이야기들을 흥미롭게 풀어놓았다.
올해는 ‘미술 한류의 원년’이다. 나는 연초에 이와 같은 포부를 발표하면서, 올해부터 국제 무대에서 한국 현대미술의 존재감을 본격적으로 높이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비록 팬데믹 시대라는 어려움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전진만이 우리의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해외에서 화려하게 펼쳐질 한국현대미술의 향연을 기대하고 있다. 이번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의 문경원&전준호 전시는 미술 한류를 여는 신호탄이기에 남다른 감회가 있다. 이제 ‘자유의 마을’은 먼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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