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보다는 불안감이 앞서는 새 정부 출범이다. 대통령은 정치 신인에 일반 행정 경험이 없고, 대통령을 보좌할 초대 내각엔 빈자리가 훨씬 많다.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안 처리를 위한 국회 본회의 일정은 아직도 미정이다. 여당은 야당의 ‘발목 잡기’를 탓하지만 1기 내각 진용이 감동을 주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초대 인사혁신처장을 지낸 이근면 성균관대 특임교수는 “왜 이 사람이 장관이 돼야 하는지 설득해내지 못한 것이 문제”라고 했다. 새 정부가 출범하도록 내각을 구성 못 하는 불행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국회 동의 절차 완료 시점을 법으로 못 박을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기업과 정부에서 40년 가까이 인사 업무를 담당해온 이 교수에게 공무원 인사 제도 개선 방안을 물었다.》
“국가인재DB 왜 활용 않나”
―윤석열 정부의 1기 내각 총평을 해 달라.
“국정의 안정적 운영을 우선한 무난한 인사라고 본다. 일부 걸러졌으면 하는 인물도 있지만 100점짜리 인사는 없다. 다만 공무원 출신이 너무 많다. 이들이 현장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지 걱정이다.”
―‘능력’ 위주로 인사했다고 하는데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들이 너무 많다.
“다양성이 부족해 아쉽다. 기업도 인사할 때 모양새를 신경 쓴다. 신입 출신과 경력 채용자, 학력, 성별, 경력 등을 두루 감안해 목표를 달성해낼 인물을 쓴다. 순혈주의로 성과가 나빠질까 봐 우려해서이기도 하지만 사원들에게 기회는 공정하다는 믿음을 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인사혁신처에 구축해둔 국가인재 데이터베이스(DB)를 활용했더라면 폭넓게 인재를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후속 인사에서는 대통령이 살아온 이력에서 벗어나 국가적 시각으로 국민께 어떤 인사를 보여줄지 고민했으면 한다.”
―내각 인사를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왜 이 사람들을 쓰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5년간의 국정목표를 제시하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이 사람들과 일하겠다고 분명히 얘기하는 것이다. A는 작전을 짤 사람이고, B는 고지 점령, C는 보급을 맡는다, 이런 식의 설명이 있어야 한다. 왜 언론이 인사 배경을 추리해서 해설 기사를 쓰게 하나.”
―내각 인사를 잘한 정부를 꼽는다면….
“박정희 정부가 산업화, 김대중 정부가 외환위기 극복이라는 분명한 목표가 있어서인지 좋은 해결사들을 기용했다고 본다. 정치적인 인사보다는 목표가 있는 인사가 좋다. 김대중 정부에선 특히 통합과 안정의 김종필 총리, 인터넷을 통한 혁신을 주도한 남궁석 정보통신부 장관 인사를 평가하고 싶다. 인사청문회 제도가 없던 시절이어서 인재 발탁도 자유로웠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안정적 수행력이 돋보인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을 꼽고 싶다. 윤 정부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소신을 분명히 밝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여러 가지 제기되는 의혹과 우려를 해소하고 장관이 된다면 서민을 위한 법무 행정을 해나가리라 기대한다.”
“국회의원도 통과못할 인사기준”
―이번 인사에서는 이해충돌의 문제를 안고 있는 후보자가 많았다. 결과적으로 인사청문회도 역량 검증보다는 도덕성 검증에 치우치고 있다.
“공직자에겐 도덕성이 중요하고 상식적으로 공직을 맡기 어려운 수준의 후보자도 있었다고 본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수준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자식을 위해 위장전입을 하는 것이 시대적 흠결이었다면 한두 번 한 것 가지고는 문제 삼지 말자는 것이다. 검증하는 국회의원도 통과 못 할 엄격한 기준을 세워놓고 흠집내기식 청문회를 하면 누가 남아나겠나. 정권이 바뀌어도 공수만 달라질 뿐 똑같은 논쟁을 반복하고 있다. 인사청문회가 인재를 사장시키는 덫이 되면 안 된다.”
―인사청문회 제도를 어떻게 바꿔야 할까.
“축구에서 시합 전 베스트 일레븐을 미리 발표하듯, 대선 후보 단계에서 예비 내각 명단을 공개하는 방법이 있다. 선거 과정에서 예비 내각을 대상으로 철저한 검증이 이뤄지게 되고, 선거에서 승리하면 예비 내각에 대해서도 국민이 투표로 승인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대통령 임기 도중 바뀌는 장관에 대해서만 인사청문회를 하면 된다.”
―새 정부가 ‘반쪽 내각’으로 출범하는 것도 문제다.
“대통령이 5년이라는 제한된 시간을 최대한 알차게 쓰려면 적어도 1기 내각은 큰 무리 없이 임기를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 헌법에 예산안 처리 시한을 회계연도 개시 30일 이전으로 못 박아 놓은 것처럼 새로운 대통령의 첫 내각은 적어도 취임 20일 또는 30일 전에 국회 동의 절차가 완료돼야 한다는 법적 강제 규정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공무원-법령 구조조정 필요”
―윤 대통령은 책임총리제 공약 취지에 따라 각 부처 장관에게도 인사권을 포함한 자율성을 부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방향은 맞지만 자율이란 해낼 역량이 있을 때 의미가 있다. 장관이 인사권을 활용할 능력이 있나. 부처 인사는 대개 서기관급 인사 담당 과장이 하는데 각 부서에서 추천하거나, 돌아가면서 요직을 맡거나, 아니면 후배나 지인을 데려다 쓴다. 기업들은 이미 인사 담당 사장 부사장을 두고 있다. 장관의 인사권을 보좌할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새 정부는 공무원 수를 현재 수준(113만 명)으로 유지하겠다고 약속했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전자정부인 데다 정부 서비스를 받는 인구도 줄고 있으니 공무원 수는 더 줄이는 것이 맞다. 그런데 오히려 늘고 있다. 문재인 정부 5년간 공무원을 13만 명 가까이 늘렸다. 1인당 1억 원씩 30년이면 30억 원이 든다. 약 400조의 국가 부담이 생긴 것이다. 공무원 연금을 빼고도 그렇다. 400조 원짜리 의사결정을 하면서 무엇을 위해 이런 인적 투자를 하는지 명쾌한 설명이 있었나. 정부도 상시적으로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공무원법으로 정년을 보장해주지 않나.
“법에 신분을 보장한다고만 돼 있지 해고하지 말라고 써 있지는 않다. 일 못하거나 문제를 일으키면 합리적 절차에 따라 해고가 가능하다(국가공무원법 70조 직권면직 조항). 그리고 구조조정이 해고만 뜻하는 것이 아니다. 새롭게 행정 수요가 생기면 수시로 재교육을 통해 재배치해야 한다. 정부가 운영하는 법률이 40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정부 생산성과 민간 활력을 떨어뜨리는 법규정도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기업과 정부의 인사 행정을 비교한다면….
“민간에서 정부의 인사 행정을 배워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기업들이 상향 평준화하는 동안 정부는 하향 평준화하고 있다. 인사는 끝이 아니라 만사의 시작이다. 공무원 개인이 가진 능력의 최대치를 끌어내도록 인사 관리를 해줘야 한다. 공무원은 자원이지 소모품이 아니다. 우리 공직사회는 일 잘하는 공무원을 우대하는 정책보다는 부정부패 감시 기능만 잔뜩 늘려 놓았다.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하면 누가 신명나게 일하겠나. 공무원 비리는 예방과 일벌백계로 근절해야 한다. 그런데 일벌백계도 안 한다. 기업은 공금 횡령하면 해고하지만 정부는 인사 발령만 내고 끝이다.”
―연금 개혁도 중요한 과제다.
“처장 재임 시절 공무원 연금 개혁으로 국민의 미래 부담을 610조 원 줄였다. 이 때문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세종시에서 전패했다는 말이 있다(박 전 대통령은 2012년 대선에서 세종시에서 1위를 했지만 공무원 연금 개혁 후 치러진 총선 두 번, 지방선거, 대선에서 당시 여당은 전패했다.) 하지만 연금 개혁은 정치적 유불리를 따질 문제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연금 개혁도 않고 공무원만 13만 명 가까이 늘려 놓는 바람에 미래 연금 지급액인 연금충당부채가 1139조2000억 원으로 커졌다. 연금 개혁 안 하는 건 세대 착취, 폰지 사기다.”
이근면 교수는
서울 중동고와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1976년 삼성그룹에 입사해 37년간 인사 업무를 맡아온 인사 전문가. 박근혜 정부 시절 세월호 사태를 계기로 관료사회 개혁을 위해 2014년 인사혁신처가 신설됐는데, 이 교수는 초대 처장에 발탁돼 2016년 6월 사퇴할 때까지 공직사회 인사 제도와 공무원 연금 개혁을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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